◆숱한 총수 ‘갑질’ 논란… 폭언·폭행에 사적 동원까지
대기업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은 2010년대 들어 사회적 문제로 부상하기 시작했다. 2014년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 회항’사건이 대표적 사례다. 조 전 부사장을 비롯한 한진그룹 총수 일가는 그간 여러 차례 구설에 올랐다. 동생 조현민 전 대한항공 전무는 광고대행사 직원을 향해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로 물컵 안의 물을 뿌리는 ‘물컵 논란’을 벌였고, 두 자매 어머니인 이명희 전 일우재단 이사장은 자택 내 근무자들에게 수시로 욕설을 내뱉고, 집안 인테리어 공사 때에는 작업자들에게 화를 내고 욕설은 물론 폭력행위를 했다는 증언이 나왔다. 이명희 전 이사장은 필리핀 여성을 회사 연수생 신분으로 입국시켜 가사도우미로 일하게 했다는 혐의로 지금 재판 중이다. 개인의 사적인 일에 회사 인력을 동원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
◆여론재판에만 의지… “회사 내 견제 필요하다”
기업 사주들의 일탈은 기업에 큰 부담이 되고 있다. 고(故)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은 생전인 지난 3월 대한항공 주주총회에서 사내이사 연임에 실패했다. 가족들의 갑질 논란에 해외연기금은 물론 국민연금까지 “기업가치를 훼손할 수 있다”며 반대표를 던졌다. 중견기업인 몽고식품의 김만식 명예회장은 운전기사를 상습적으로 폭행했던 것이 드러나면서 사퇴했고 매출은 반토막이 났다.
대기업 총수 일가의 갑질은 여론의 관심이 사라지는 순간 언제든지 재연될 수 있다. 기업 오너들의 ‘내 회사인데 누가 뭐라 하느냐’는 식의 사고방식이 바뀌지 않는 한 갑질은 언제든 다시 불거질 수 있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회사임에도 ‘내 회사’라는 사고방식이 강한 오너일수록 회사 임직원들을 부하나 신하처럼 다루게 된다. 이는 우리나라 기업의 의사결정이 오너의 독단으로 이뤄지고 ‘회사 내 견제’가 미약한 현실 탓이다. 앞서 인크루트 설문조사에서 응답 직장인의 93%는 오너 일가가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는 국내 기업들의 지배구조가 개선돼야 한다고 답했다.
이정우 경북대학교 명예교수는 “우리나라 재벌의 의사결정구조가 자체가 비민주주의적이고 지분에 비해 과다한 의사결정구조를 지닌다”고 지적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1998년부터 회사 밖의 외부인사가 이사회에 참여하는 사외이사제도를 두고 있지만 ‘거수기’에 불과하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는다.
기업 경영성과 평가사이트 CEO스코어가 지난해 57개 대기업 집단 소속 상장 계열사 251곳의 사외의사 활동을 전수 조사한 결과 찬성률이 무려 99.66%에 달했다. 대주주 뜻대로 사외이사를 임명할 수 있는 현 제도상으로는 필요 시 ‘방패막이’가 될 수밖에 없다.
이도형 기자 scop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