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차에 걸친 정부의 3기 신도시 발표 계획으로 기존 1·2기 신도시 입주 예정자들의 불만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교통여건 개선 등 신도시 개발에 따른 긍정적인 측면보다 공급 과잉에 대한 우려가 부각되는 형국인 탓이다.
특히 경기 고양의 일산 신도시 등 몇몇 지역 주민들은 3기 신도시 건설에 반대하는 집단 행동도 불사한다는 입장이다.
◆1·2기 신도시 집값 하락…새 아파트 분양·입주도 줄줄이
일산을 비롯한 경기 파주와 김포, 인천 등지의 주민들은 고양 창릉 지구에 3만8000가구, 부천 장대 지구에 2만가구의 새 아파트가 신규 공급된다는 전날 소식에 당혹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가뜩이나 집값이 약세인데, 추가 공급 계획까지 나오면서 시장 침체가 지속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8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지난해 9·13대책 후 지난달까지 서울의 아파트값이 0.04% 하락하는 동안 2기 운정 신도시가 자리잡은 파주의 아파트값은 1.25%나 떨어졌다.
같은 기간 1기 일산 신도시 권역인 일산동구는 0.54%, 일산서구는 0.71% 각각 하락했다. 이 지역은 경기도 평균 하락률(0.03%)보다 더 많이 내렸다.
이곳 주민들이 3기 신도시 건설을 우려하는 이유는 집값이 약세인데 당장 추가 입주와 분양 물량도 쏟아질 예정인 탓이다.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올해부터 2021년까지 경기 고양·김포·부천·파주, 인천 부평·서·계양구 일대에서 입주 예정인 새 아파트의 물량은 모두 6만1870가구에 이른다.
2기 신도시인 김포시가 1만8000가구로 가장 많고, 고양시가 1만7000가구로 두번째다.
경기 고양·김포·부천·파주, 인천 부평·서·계양구 일대에서 연내 신규 분양될 물량도 4만3000여가구에 달한다.
이 가운데 2기 신도시인 인천 검단 지구가 1만2000여가구를 차지한다.
검단 지구는 파주 운정 3지구와 더불어 그동안 분양이 수년간 지연되다가 올해부터 분양이 본격화될 예정이었다.
인천 검단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검단은 인접한 인천 계양 테크노밸리가 앞서 3기 신도시로 지정되면서 미분양이 급격히 늘었는데, 어제 발표로 또 한번 찬물을 끼얹었다”고 토로했다.
3차 3기 신도시로 계양과 붙어있어 서울 접근성이 훨씬 좋은 부천 대장이 지정됨에 따라 분양이 더욱 어렵게 됐다는 하소연이다.
◆기존 신도시 주민들 불만 확산…일산서구 ‘집단시위’ 예고
이 때문에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과 부동산 관련 인터넷 카페 등에는 1·2기 신도시 주민들의 불만이 쏟아지고 있다.
청와대 게시판의 한 청원인은 “(서울) 강남 급매물이 조금 거래됐다고 경기도가 (새 아파트) 몇만 가구를 떠안아야 하느냐”며 “고양시, 특히 서구는 역전세난으로 고통받고 있는데 이런 곳에 새 아파트를 퍼붓는다는 것은 과도하다”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이처럼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의 지역구인 일산서구 주민들의 반발이 크다.
일산신도시의 한 주민이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올린 ‘3기 신도시 고양 지정, 일산 신도시에 사망 선고-대책을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의 글은 청원 시작 이틀째인 8일 오후 참여 인원이 6300명을 넘어섰다.
일산서구 후곡마을 주민모임회는 3기 신도시 반대 구호 등을 준비하며 집단시위를 벌일 예정이라는 소식도 전해졌다.
일산 신도시 거주민 8000명 이상이 회원으로 있다는 ‘일산 인포’ 블로그의 운영자는 “일산의 아파트가 노후화된 반면 젊은 층의 수요는 신규 공급 아파트로 쏠릴 전망”이라며 “일산 신도시나 인접 토지에 주거시설이 아닌 대규모 자족시설을 만들고, 수도권 과밀억제권역에서도 제외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산동구 식사동의 한 중개업소 대표도 “구체적으로 도시계획이 나오는 것을 봐야겠지만 (3기 신도시가) 일산 신도시로서는 좋지 않은 뉴스임이 분명하다”며 “가뜩이나 베드타운인데, 아파트만 계속 들어오다 보니 주민들의 걱정이 많다”고 전했다.
다른 2기 신도시도 마찬가지 분위기다.
경기 화성 동탄2 신도시에 거주하는 한 주민은 “수도권, 특히 서울 인근의 분양 물량이 너무 많아서 서울과 25㎞ 이상 떨어진 2기 신도시는 집값 하락이 우려된다”고 하소연했다.
◆일부 “교통개선 수혜 기대감” VS “광역교통계획 제때 작동하나가” 우려도
이와 달리 신도시 건설 계획으로 수혜를 기대하는 의견도 적진 않다. 당장 창릉과 인접한 고양 삼송·원흥지구는 대중교통 여건의 개선만큼은 호재로 받아들이고 있다.
고양시의 한 중개업소 대표는 “(서울) 새절역(서부선)부터 고양시청까지 지하철 ‘고양선’이 신설되고, 경의·중앙선 화전역과 지하철 신설역이 BRT(간선급행버스체계)로 연결되면 향동, 원흥지구 인근 주민들의 지하철 이용이 편리해진다”며 “공급과잉 우려에도 교통여건 개선에 대한 기대감도 크다”고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그러나 정부 계획대로 광역교통망이 제때 확보될 지는 미지수다.
당장 은평구 응암동 소재 새절역이 들어서는 서부선은 서울시가 추진하는 것으로 민자 적격성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
업계는 서부선 건설을 빨라야 오는 2028년으로 보고 있다.
부천 대장은 김포공항역과 부천종합운동장역을 잇는 ‘S(슈퍼)-BRT’ 설치가 핵심인데, 정부 계획대로 서울역까지 30분, 서울 여의도까지 25분에 가기 위해선 광역급행철도(GTX)-B노선 완공이 돼야 한다.
전문가들은 이번 부천 대장 등 3기 신도시 건설로 예비 타당성 조사가 진행 중인 GTX-B노선의 경제성이 높아지면서 통과 가능성도 커진 것으로 보고 있지만 신도시 입주 시기에 맞춰 완공 될지는 미지수다.
부동산 개발·분양업체인 내외주건의 김신조 대표는 “3기 신도시가 서울 외곽과 비강남권의 수요라도 분산하기 위해서는 수도권 광역교통망 확보가 관건”이라며 “집값 하락을 우려한 기존 주민들의 반대도 넘어야 할 산”이라고 진단했다.
김경호 기자 stillcut@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