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것들에 숨겨진 세밀화를 좇아온 소설가 유경숙(사진)이 그 그림 속에서 발견한 무늬들을 산문집 ‘세상, 그물코의 비밀’(푸른사상)에 담아냈다. 따스한 감성과 연민이 깃든 글들이 단아한 문체에 실려 공감을 자아낸다.
‘좋은 그림은 그 속에 그윽한 향기를 지니고 있다’고 믿는 작가는 자신의 집 거실에 오래 걸려 있는 김홍도의 ‘기우도’(騎牛圖)가 머금은 ‘잠향’(潛香)을 은은하게 전달한다. 어느 잔인한 3월, 작가 부부는 싸움을 크게 벌이고 한 달 넘게 각방을 쓰며 침묵 속에 지냈다. 아내가 파업을 한 셈이니 집안이 썰렁하고 삭막할 것은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이 가정을 다시 된장찌개 냄새가 나는 푸근한 공간으로 되살린 것은 황혼녘 소를 타고 귀가하는 그림 속 농부였다. 심신이 지쳐갈 무렵 아내에게 그 농부는 ‘훌렁 벗겨진 이마와 땀에 절었을 배적삼이 굽은 등을 더욱 슬퍼보이게 하는 허기진 모습’으로 다가왔다는 것이다. 그림의 향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기실 그림에 투사된 아내의 연민이 더 향기로운 대목이다.
순결해 보이는 아그배꽃 앞에서는 “자식을 위한 것이라면 그 가시조차도 삼켜버릴 맹독을 품고 사는 존재가 어미들의 몫”이라고 생각하고, 유년기의 탱자나무를 떠올리면서는 “장미 가시가 제 꽃을 보호하기 위해 독을 품었다면 탱자나무 가시는 남을 지켜주기 위해 날카로움을 지녔다”고 쓴다. 키르기스스탄 작가의 ‘백 년보다 긴 하루’라는 작품을 소개하면서는 제 어머니에게 활시위를 당긴 비극의 노예 ‘만쿠르트’ 청년을 소개하며 “물질의 풍요와 돈만 좇는 현대인들에게 어떤 형태로 만쿠르트의 뼈저린 아픔이 닥쳐올지 아무도 모를 것”이라고 경고한다.
‘모정’ ‘세상, 그물코의 비밀’ ‘도원을 찾아서’ ‘책과 영화의 뒷담화’ ‘내가 따를 사표’ 등 5부에 걸쳐 다양한 아야기를 담아낸 산문집 서문에서 유경숙은 “자연현상과 세상과의 관계, 저들의 세밀화 속에 숨겨진 지문을 찾고, 생명의 들숨과 날숨소리를 듣고 또 미세한 떨림을 관찰하여 인간의 언어로 전하는 것, 그것이 나의 글쓰기 작업”이라고 밝혔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