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비닐봉투 안 쓰려고 했더니…” 편의점선 보기 힘든 재사용 종량제 봉투

서울 25개 자치구 실태조사 결과 / 자치구당 평균 14곳만 봉투 판매 / 5개 구내 편의점선 아예 안팔아 / 대형마트선 이미 보편화 ‘대조적’ / 환경오염 줄이려 사용 권장 불구 / 당국 홍보 부족에 정착 갈길 멀어

“그냥 비닐봉투 말고 재사용 종량제봉투는 없나요?”

 

서울 영등포구에 사는 직장인 이모(24)씨는 편의점에서 과자 2봉지와 컵라면 1개, 음료수 1개를 사면서 물건을 담기 위해 손잡이가 달려 있는 재사용 종량제봉투를 찾았다. 그러나 아르바이트생은 “재사용 종량제봉투는 판매하지 않는다”며 비닐봉투를 20원에 구매해야 한다고 했다.

 

정부는 ‘자원의 절약과 재활용 촉진에 관한 법률 시행규칙’에 따라 지난달부터 대형마트나 백화점 등에서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을 전면 금지시켰다. 하지만 규제대상에서 빠진 편의점은 여전히 비닐봉투 유상판매가 가능하다. 이씨는 “대형마트보다 편의점을 찾는 일이 많은데, 일반 비닐봉투 말고 재사용 종량제봉투를 판매하면 좋겠다”며 아쉬움을 토로했다.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 금지조치로 재사용 종량제봉투가 비닐봉투의 대안으로 자리 잡고 있지만, 여전히 편의점은 환경보호의 사각지대로 남아 있다. 정부가 편의점에도 재사용 종량제봉투를 비치할 것을 권장하고는 있지만, 정부와 지자체의 홍보나 의지 부족으로 인해 제대로 정착되지 않고 있다.

 

9일 세계일보가 서울 25개 자치구를 대상으로 재사용 종량제봉투 판매현황을 확인한 결과 총 258개 편의점에서만 재사용 종량제봉투를 판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치구당 평균 14.3곳으로, 서울시내 전체 편의점(7542개, 2016년 말 기준)을 기준으로 하면 겨우 3% 정도에 해당하는 수치다. 아예 판매하는 편의점이 없다고 답한 자치구가 5곳이었고, 7곳은 관내 판매현황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거나 확인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이유 등으로 응답을 미뤘다.  

 

환경부의 ‘쓰레기 수수료 종량제 시행지침’에 따르면 정부는 종량제봉투 판매소로 지정된 편의점에 대해 재사용 종량제봉투를 판매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시행지침에도 “종량제봉투 판매소로 지정된 편의점에 대해서 재사용 종량제봉투를 비치하고 판매하도록 조치하라”고 적시돼 있다. 

 

그럼에도 당국은 편의점에서 재사용 종량제봉투 사용이 정착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상황이었다. 환경부 관계자는 “재사용 종량제봉투 판매가 가능하도록 제도를 열어놨다”며 “재사용 종량제봉투 판매가 잘 안 되고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지자체가 더 잘 알 것”이라고 답했다. 서울시는 자치구에서 재사용 종량제봉투 제작과 공급을 담당하고 있는 만큼 시 차원에서 관여할 근거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 점주들은 편의점에서 재사용 종량제봉투를 판매할 수 있는지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았다. 서울 구로구의 한 편의점 점주는 “재사용 종량제봉투를 판매할 수 있는지 몰랐다”며 “(판매가) 가능하다면 우리도 당연히 판매할 의향이 있다”고 말했다.

 

다양한 크기의 재사용 종량제봉투 제작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 주로 판매되고 있는 재사용 종량제봉투의 크기는 20ℓ다. 이는 편의점에서 사용하기에는 다소 큰 크기다. 한 점주는 “20ℓ재사용 종량제봉투는 편의점에서 판매하기엔 다소 크다”며 재사용 종량제봉투를 판매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했다. 서울시 성동구는 지난 3월1일부터 5ℓ와 10ℓ 재사용 종량제봉투를 판매하고 있다. 5ℓ와 10ℓ 봉투 제작‧판매 후 편의점 측에서 재사용 종량제봉투를 주문하는 양이 늘었다는 것이 성동구 재사용 종량제봉투 판매업체 측의 설명이다. 한 판매업체는 “10ℓ 종량제봉투가 생기면서 편의점의 재사용 종량제봉투 발주량이 확실히 늘었다”며 “덩달아 20ℓ 종량제봉투 발주량도 꽤 늘었다”고 밝혔다.

 

환경단체들은 편의점에서도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을 점진적으로 규제하고 종이봉투나 재사용 종량제봉투 등이 일상화되도록 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양지안 녹색구매네트워크 사무처장은 “모든 걸 한 번에 바꾸기엔 부담이 있다고 판단을 해서 정부가 일부 업종만 일회용 비닐봉투를 규제하는 결정을 했다고 본다”며 “정부가 하루빨리 편의점이나 시장의 일회용 비닐봉투 사용에 대해서도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원순환사회연대 김태희 정책국장은 “비닐봉투를 사용을 줄이기 위해서 일반 비닐봉투를 유상으로 판매하는 것보다는 가능한 재사용 종량제봉투를 쓰는 것이 좋다”며 “편의점에서 재사용 종량제봉투 판매가 잘 이뤄지기 위해서는 종량제봉투의 크기를 다양화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남혜정·이희진 기자 hjna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