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간인 위장 보안사 편의대...이를 북한 특수부대로 오인한 듯
- 5월 21일 전두환 광주 방문 뒤 70여명 집단 사살
- 시신 광주통합병원서 소각...재는 청소차로 버려
5·18민주화 운동 당시 보안사령부가 민간인을 폭도로 오도하려는 등의 목적으로 편의대(민간인으로 위장한 공작요원)를 구성했다는 충격적 증언이 나왔다. 보수논객 지만원씨 등이 주장한 '5·18때 북한 특수요원 침투설'도 보안사 편의대를 오인한 결과였다는 추론도 가능하다.
또 5·18 희생자의 시신을 비밀리에 소각한 뒤 청소차를 이용해 재를 처리했다는 증언도 나와다.
◆ '팩트만 보고한다'는 미군 정보원 "광주 제1전비서 보안사 편의대 목격"
70년대 중반부터 90년대 후반까지 25년간 미군 정보부대(501정보여단)에서 활동했다는 김용장씨는 지난 13일 자신이 목격하고 상부에 보고한 사실을 더불어민주당 등의 주선으로 39년만에 털어 놓았다.
이어 14일엔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 인터뷰를 가졌다.
김씨는 1980년 5월 광주 제1전투비행단(K57) 격납고에서 민간인 복장을 한 편의대(특수공작대) 30~40명을 목격했다고 밝혔다.
김씨는 "편의대란 말은 편리한 복장을 한 사람들이라는 뜻 아니겠는가. 군인이 민간인 복장을 하고 어떤 일을 수행하잖아요. 그걸 편의대라고 하는데 그 사람들이 한 30-40명 헬기를 타고 왔다"며 "광주를 가서 유언비어를 유포하기도 하고 또 시 군중들이 어떤 행동을 하도록 유도하고 또 과격한 시위를 해서 폭동하는 이런 일을 했다. 그건 보고를(상부에) 하지 않고 다만 편의대가 현장에 있었다. 그것만 보고 했다"고 편의대 존재는 분명한 팩트라고 강조했다.
◆ 편의대가 북한군인 것처럼 활동했을 것...지만원씨 정보에 문외한처럼 보여, 어떻게 스토리를 그렇게
김씨는 진행자가 "북한군이 와서 시민들 사이에 섞여서 했다라고 했던 그 행태들을, 지령을 받고 행동한 편의대의 행동이라고 추정하는지, 군 수송물을 탈취한다든지 유언비어를 조장한다든지 시민들 사이에 섞여서 이런 일을 했다고 보는지"라고 묻자 "그분들이 했다고 저는 확신하고 틀림없는 사실이다"고 답했다.
김씨는 "북한 특수군 600명이 광주시내에 침투를 했다는데 왜 광주로 와요? 서울로 가지. 그 먼 길을 통해 잠수함 타고 또 태백산을 넘어서 문경을 지나 지리산을 또 넘고 광주로. 그건 그야말로 추상 중에서도 추상 아니겠는가"면서 "아예 얘깃거리가 안 된다. 제가 만약에 지만원 씨라고 하면 그 스토리를 그렇게 안 만들고 다르게 만든다. 그 분이 정보에 대해서 문외한이지 않느냐. 이런 생각이 든다. 좀 그럴 싸하게 스토리를 만들어야 되는데"라고 혀를 찼다.
◆ 민간인으로 위장...정보기관의 임무 중 하나
김씨는 진행자가 "편의대가 광주 민주화 운동 때뿐 아니라 다른 사건 때도, 예를 들어 87년 6·10 항쟁 이 때도 이런 식으로 투입이 됐을 가능성이 있는가"고 질문하자 "가능성은 배제할 수 없지만 그 당시 광주에 있었고 제가 보고한 내용이기 때문에 어떤 그런 가능성을 제가 상상하거나 이럴 수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김씨는 "(편의대가) 보안사 임무 중에 이런 일들을 공작이라고 한다. 그 공작에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일을 하는 것"이라고 군 정보요원이 민간인을 위장해 활동하는 것은 군 정보기관 임무라고 했다. .
◆ 5월 21일 낮 12시 전두환 광주로 와 1시간 머물러, 떠난 뒤 70여명 사살당해...사살명령 없이는~
김씨는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광주로 분명히 내려 왔다고 했다.
김씨는 "1980년 5월 21일 낮 12시쯤 헬기로 확실히 와 1시간 후에 돌아갔다"면서 "(이는 확실한 정보원) 정보원을 통해서. 전화로 (정보가) 왔다"고 했다.
정보원 보고가 "이미 와서 대기하고 있었던 정호용 특전사령관, 505보안대의 이재우 대령 그리고 또 한 분~"이라고 했다.
김씨는 전두환 광주방문 때 '아마 발포 명령을 넘어서 사살 명령이 있었을 것으로 본다'고 추론한 이유에 대해 "제 사견이다"는 점을 전제 한 뒤 "그분이 서울로 돌아간 바로 직후에 광주 도청 앞에서 집단 사살이 이뤄졌다. 나중에 알고 보니까 한 70명 집단 사살을 당했는데 그건 전두환 씨 명령이 없이는 가능하지 않다. 그래서 전두환 씨가 사살 명령을 내렸을 것이다라고 저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는 모든 우리 정보원들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 했다.
김씨는 "발포는 그 이전에도 이루어졌는데 그렇게 집단 사살 행위는 전두환 씨가 광주에 온 이후에 일어났다. 그래서 이런 것들은 (진실규명)위원회가 결성이 되면 거기서 밝혀져야 할 일이다"고 지적했다.
김씨는 "(광주에 온 전두환을 목격한) 정보원은 복수로 지금 다 살아계실 것"이라고 했다.
다만 그 분 들의 양심선언 가능성에 대해선 "그럴 수도 있지만 좀 회의적이다. 자기가 속해 있는 조직으로부터 왕따를 당할 수 있는. 특히 정보 기관에서는 배신자. 이런 낙인을 찍힐 가능성이 많다. 양심 선언을 해서 오는 여러 가지 불이익들.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감히 못 한다"고 부정적으로 판단했다.
◆ 광주통합병원서 시신 소각...그리고 청소차가
김씨는 아직도 행방이 묘연한 5·18 실종자와 관련해 '시신을 소각해 처리했다'는 가슴 섬뜩한 증언도 했다.
김씨는 "그 시신을 소각했다는 첩보를 입수해서 보고한 내용이고 광주통합병원에 시신이 운반되고 거기에서 소각했다는 것까지 말했다"고 당시 상부에 보고한 정보내용을 공개했다.
김 씨는 '몇 구 정도, 어떤 식으로 소각이 됐는지'에 대해선 "금도 모르고 있다. 몇 구가 소각됐는지"라고 한 뒤 "나중에 들은 얘기들은 시신에서 나오는 재를 청소차를 이용해서 어딘가에 버렸다, 갖다버렸다. 이런 얘기를 들었다"고 했다.
다만 재처리 등은 "(미군에) 보고한 내용은 아니다"고 했다.
박태훈 기자 buckbak@segye.com
사진=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