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과를 풍장하다 [詩의 뜨락]

김영자

낭창낭창해지려나 새봄의 햇볕에게 맡겨 놓으면 발효를 시작하려나 가슴으로 눕는 모과 한 알이 내게 온 것은 여행의 시작이었을 것. 아니면 인연이었을 것. 새끼손톱만 한 갈빛 반점이 번져 가는 중 들새들에게 내어놓으면 돌아보려나 아직 남아 있는 향기 때문에 조금씩 더 조금씩 건드려 보려나



부드러움과 살아있음의 날이 주름도 잡히지 않은 채 돌처럼 굳어가다니 조금 남아 있는 정갈한 향기마저 사라지면 흙으로 가려나 풍장을 해야겠다 들새와 바람과 햇볕과 함께 그의 긴 그림자를 끌어안고 물어보아야겠다 뜨거움은 무엇인지 문득문득 스치고 가는 향기는 어디서 왔는지 이미 사라져 가는 것들에 대한 묵상의 소문

―신작시집 ‘호랑가시나무는 모항에서 새끼를 친다’(파란)에서
 

◆김영자 시인 약력

 

△1946년 전북 고창 출생 △1997년 ‘문학과 의식’으로 등단 △시집 ‘양파의 날개’ ‘낙타 뼈에 뜬 달’ ‘전어 비늘 속의 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