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장애인 A씨는 4년 전 서울 종로구의 한 영화관에서 아찔한 경험을 했다. 영화 관람 중 갑자기 무언가 타는 냄새가 상영관 내에서 퍼지는 걸 느꼈다. 불이 났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불안에 떨었지만 영화관 측은 안내방송 등 아무런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다. A씨는 2시간 넘는 상영 시간 내내 전전긍긍하며 자리에 앉아 있어야 했다. A씨는 “영화관에서 비상사태에 대한 안전교육이 부족했다는 것을 느꼈다”며 “당시 느꼈던 불안감이 생각나 4년이 지난 지금도 다시 영화관을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체장애인 박모(58)씨도 5년 전 서울 강동구의 한 영화관에서 벌어진 일을 잊지 못한다. 한창 영화를 관람하던 중 갑자기 스크린이 꺼지고 영화관 모든 불빛도 나가면서 암흑천지가 됐다. 주변 관람객들이 자리를 뜨기 시작했지만, 혼자 이동이 어려운 박씨는 한동안 불안에 떨며 직원이 오기만을 기다려야 했다.
업체별로 보면 CGV는 “상영관별 대피 안내 시 재해 약자가 최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등 비상시 재해 약자 피난안내 내용을 적시했지만, 장애 특성에 맞는 대피계획을 마련해놓지 않고 있다. 다만 CGV 관계자는 “직원들이 현장 상황을 고려해 장애인이나 몸이 불편한 이들을 적절하게 대피시킬 수 있도록 수시로 훈련을 하고 있다”고 전했다.
장애인 관련 대피계획을 마련해둔 롯데시네마와 메가박스도 직원들이 내용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장애인이 위급상황에서 도움을 받기는 쉽지 않다. 서울의 한 롯데시네마 지점에서 근무하는 B씨는 “재난 시 대피 관련 교육은 받지만 장애 유형별 대피계획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메가박스 한 지점에서 근무하는 C씨도 “관리자가 장애 유형별 대피계획을 알려주기는 하지만, 이를 세세하게 알고 있지는 않다”고 설명했다.
장애인단체 측에서는 장애인 등 거동이 불편한 이들을 위한 대피 유도 방법이 의무적으로 재해대처계획에 반영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특히 장애 유형별로 대피 절차를 설계해놓는 것이 필수다. 가령 관람객 중 시각장애인이 있을 때 불이 났을 경우, 시각장애인이 위치한 자리에서부터 대피로를 구두로 설명할 수 있도록 문장을 구성해놓아야 한다. 특히 영화관의 경우 단기로 일하는 아르바이트생이 많아 매뉴얼이 구체적이어야만 위급상황에서 체계적인 조치가 가능하다.
정의당 추혜선 의원은 지난달 장애인단체 ‘장애의 벽을 허무는 사람들’과 함께 이러한 내용을 포함한 영화·비디오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법안은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 회부됐지만, 국회 파행이 계속되며 아직 한 차례도 논의된 적은 없다.
조한진 대구대 교수(장애학)는 “현재 영화관 내 피난시설이 부족해 장애인들은 재난 시 속수무책인 상황”이라며 “장애 유형별 대피 계획을 구체화한 매뉴얼과 이를 바탕으로 한 훈련이 꼭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희경·이강진 기자 ji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