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행자와 같은 치열한 삶의 기록
국립현대미술관(관장 윤범모)은 올해 개관 50주년을 맞아 서울관에서 ‘박서보-지칠 줄 모르는 수행자’전을 연다. 지난 64년간 박 화백의 작품 세계를 망라한 대규모 회고전이다. 총 129점을 선보인다. 전시장 입구에서 관람객들을 맞는 신작 2점을 시작으로 관람 동선을 따라 작품 세계를 거슬러 올라간다.
◆병마도 꺾지 못한 예술혼… 수신 넘어 치유로
전시장을 둘러보다 보면 한 작가가 그린 게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로 작업의 스펙트럼이 넓다. 박 화백의 1950∼1960년대 작품은 물감을 흩뿌린 비정형이거나 서구의 옵아트, 팝아트를 연상케 한다.
1969년 미국인 닐 암스트롱이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사건은 박 화백을 충격에 빠뜨렸다. 그는 “(우주의) 무중력을 어떻게 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며 “붓은 그 자체에 탄력이 있어 저항이 생기는데 스프레이를 뿌려 그리니 화면에 저항이 없어졌다”고 했다.
박 화백은 결국 폐병에 걸렸다. 방독면도 소용없었다. 병마가 예술혼을 꺾지는 못했다. 1970년대 초기 묘법은 연필에서 출발했다. 캔버스에 유백색 물감을 칠한 뒤 물감이 마르기 전에 연필로 선을 무수히 그어 나갔다. 1980년대에는 한지를 사용했다. 캔버스에 한지를 여러 겹 붙여 한지가 마르기 전 손으로 긁거나 문질렀다. 1990년대 중반에 들어서는 손이 아닌 막대기나 자를 이용해 일정한 간격으로 한지를 밀어내 슬레이트 같은 질감을 표현했다.
시련은 또 찾아왔다. 2009년 뇌경색으로 쓰러진 것. 치유라는 예술의 역할을 강조하는 그 자신에게도 그림은 수신인 동시에 치유가 된 이유다.
“몸의 반쪽(다리)을 제대로 쓰지 못하게 돼 조수들을 썼습니다. 그때부터는 (수신이 아닌) 치유가 목적이었죠. 신작 2점은 연필 작품인데 과거의 연필 작품과 달라요. 컬러를 썼습니다. 또 지금은 앉았다 일어났다 할 수 없고 서서 일할 수밖에 없어요. 신작은 내 신체에 맞는 예술입니다. 수신과 치유를 동시에 잡는 그림이라 믿고 있습니다.”
◆“예술가에겐 통찰력과 열정이 가장 중요”
박 화백은 예술가의 자질로 통찰력과 열정을 꼽는다.
“아날로그 시대에 70년을 산 사람입니다. 예술가에게 제일 중요한 건 책이나 교양, 철학이 아닙니다. 그 시대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 식을 줄 모르는 열정 이 두 가지만 있으면 모든 것을 극복해 낼 수 있습니다. 지식은 자기를 개방적으로 이끌어 가는 데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21세기 디지털 시대인데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느냐, 자신이 없어요. 아날로그 시대의 성공을 그나마 유지하려면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끝까지 해보자’ 했죠. 오기가 많은 사람입니다.(웃음)”
결국 예술은 시대를 읽어 내야 하고 시대성과 무관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아날로그 시대 예술의 특징은 작가들이 이미지를 토해 놓으면 사람들이 그걸 사는 것이었다”며 “디지털 시대 예술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전시장 한쪽 벽면을 장식한 그의 좌우명 ‘변하지 않으면 추락한다. 그러나 변하면 또한 추락한다’는 문구가 다시 보였다. 전시는 오는 9월1일까지.
박진영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