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최초의 황금종려상인데, 마침 올해가 한국영화 100주년이 되는 해여서 칸영화제가 한국영화에 의미가 큰 선물을 준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제72회 칸국제영화제에서 신작 ‘기생충’으로 최고상을 품에 안은 봉준호(50) 감독은 지난 25일(현지시간) 시상식 뒤 기자회견에서 못다 한 수상 소감을 이같이 밝혔다. 그의 말대로 세계 영화계 최고의 영예인 이 상은 한국영화의 또 다른 100년을 위한 도약대가 될 것이다.
봉 감독은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두 주먹을 쥐고 연신 양팔을 들어 올리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면서도 시종일관 겸손한 모습이었다. 그는 “‘기생충’은 위대한 배우들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었던 영화”라며 “이 자리에 함께해준 가장 위대한 배우이자 나의 동반자인 우리 송강호의 멘트를 꼭 듣고 싶다”면서 배우 송강호에게 마이크를 돌려 눈길을 끌었다.
심사위원장을 맡은 멕시코 출신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 감독은 기자회견에서 “‘기생충’은 정말 색다른 경험이었다”며 “예상치 못한 방법으로 우리를 여러 장르로 이끄는, 한국영화이지만 (빈부 격차 문제를 다룬) 세계적인 영화”라면서 심사위원단 만장일치 결정의 이유를 설명했다.
봉준호 감독은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디테일에 강한 연출로 대중성과 작품성을 겸비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69년 대구에서 태어난 봉 감독은 어릴 때부터 ‘영화광’이었다. 그는 수상 소감을 통해 “열두 살에 영화감독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소심하고 어리숙한 영화광이었다”고 돌아봤다.
연세대 사회학과를 나온 그는 2000년 첫 장편영화 ‘플란다스의 개’로 홍콩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상과 뮌헨영화제 신인감독상을 받으며 주목을 끌었다. 그 뒤 ‘살인의 추억’(2003)과 ‘괴물’(2006), ‘마더’(2009) 등 다양한 소재와 장르의 영화를 선보이며 작품 세계를 구축해 왔다. ‘괴물’은 1091만여명을 동원해 흥행에 성공했다. 치밀한 각본과 디테일이 강한 연출로 ‘봉테일’이란 별명을 얻었다.
2013년 ‘설국열차’로 할리우드에 진출하며 세계적인 명성을 떨쳤다. 2017년에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 업체 넷플릭스와 손잡고 ‘옥자’를 만들어 극장이란 전통적인 영화 배급 방식을 탈피했다.
봉 감독은 칸영화제에 5번째 진출한 끝에 마침내 최고상을 차지했다. 2006년 ‘괴물’로 감독 주간에 초청돼 처음 인연을 맺었다. 2017년에는 공장형 사육 시스템과 동물 착취 문제를 다룬 ‘옥자’로 경쟁 부문에 초청받았다.
그는 스스로를 “장르 영화감독”이라고 칭한다. 그의 작품은 한 장르로 구분되지 않는다. ‘기생충’도 블랙코미디, 스릴러 등 여러 장르가 결합된 작품이다.
◆수상 일찌감치 예고… 최고점, 8분간 기립 박수
봉 감독의 수상 가능성은 이미 어느 정도 점쳐졌다. 그가 2년 만에 선보인 새 영화 ‘기생충’은 올해 칸영화제에서 최고 화제작 중 하나였다. 공식 상영회에 앞서 지난 20일 영화제 소식지인 ‘스크린 데일리’는 가장 높은 평점을 매겼다. 다음 날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상영된 뒤에는 관객 2300여명이 8분간 기립 박수를 보내 눈길을 끌었다.
미국 CNN방송은 “봉 감독의 황금종려상 수상은 비평가들 사이에서는 환영할 만한 선택이었다”며 “그들(비평가들) 중 다수는 ‘기생충’이 페드로 알모도바르, 쿠엔틴 태런티노, 켄 로치 등 거장들의 작품에 맞설 수 있도록 열심히 로비를 했다”고 보도했다.
이 영화에 별점 5개 만점에 4개를 준 영국 일간 가디언도 “부드럽게 전개되는, 호화롭게 볼 수 있는 풍자적인 서스펜스 드라마”라는 영화 평론가 피터 브래드쇼의 감상평을 함께 소개했다. AFP통신은 “봉 감독은 박찬욱 감독과 함께 한국영화 황금 세대”라면서 “그는 한국에서 표현의 자유를 옹호하며 예술가들에 대한 정치적 탄압에 반대하다가 박근혜정부 시절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에 올랐다”고 보도했다.
박진영·유태영 기자 jy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