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선동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9년이 확정돼 복역 중인 이석기 전 통합진보당 의원이 법원에 재심을 청구한다. 이 문제는 박근혜정부 시절 헌법재판소의 통진당 위헌·해산 결정과도 맞물린 민감한 사안이라 법조계는 물론 정치권도 촉각을 곤두 세우는 눈치다.
만약 법원이 청구를 받아들여 재심 개시를 결정하면 이 전 의원 측은 헌재에 위헌정당해산 결정 재심도 신청할 것이 확실해 보인다.
자연히 2013∼2014년 통진당 해산을 위해 전력을 다했던 법무부·검찰의 향후 대응 방향에도 시선이 쏠린다.
◆'양승태 사법부' 겨냥 재심 청구 첫 사례 해당
4일 ‘사법정의 회복을 위한 내란음모 조작사건 재심 청구 변호인단’에 따르면 이들은 5일 법원에 이 전 의원 재심 청구서를 접수함과 동시에 서울 서초구 법원 청사 앞에서 관련 기자회견도 열 예정이다.
박근혜정부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사태가 불거진 이후 이른바 ‘재판 거래’ 의혹이 제기된 사건을 두고 재심 청구가 이뤄지는 첫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 전 의원은 애초 검찰이 제기한 내란음모와 내란선동 혐의 중 내란음모는 무죄가 선고돼 징역 9년형을 확정받고 현재 대전교도소에서 복역 중이다. 이 전 의원이 국보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구속된 것이 2013년 9월이니 9년 형기를 꽉 채운다면 오는 2022년 9월에나 출소가 가능하다.
8·15 광복절이 2개월 여 앞으로 다가온 만큼 변호인단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이 전 의원에 대한 특별사면도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정부는 출범 첫해인 2017년, 그리고 올해 들어 3·1절 이렇게 두 차례 특사를 단행했으며 아직 광복절 특사를 단행한 적은 없다.
◆바늘구멍보다 좁은 '재심의 문' 과연 통과할까
이 전 의원의 징역 9년형 확정 판결은 2015년 1월 대법원 전원합의체에서 내려졌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재판장, 김소영 전 대법관이 주심을 각각 맡았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직권남용 혐의로 최근 검찰에 구속됐다. 변호인단이 재심 필요성을 주장하는 근거도 바로 이 대목이다. “이 전 의원의 내란선동 및 국보법 위반 혐의 사건을 재판하는 과정에서 양 전 대법원장이 박근혜정부와 부당한 ‘거래’를 시도한 사실이 드러난 만큼 관련 재판을 다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 법원이 재심을 허용하는 기준은 매우 까다롭다. 형사소송법 420조에 의하면 △원 판결의 증거 서류 또는 증거물이 위조 또는 변조인 것이 증명된 때 △원 판결의 증거가 된 증언, 감정, 통역 또는 번역이 허위인 것이 증명된 때 △원 판결 또는 그 기초가 된 조사에 관여한 법관, 공소 제기 또는 그 기초가 된 수사에 관여한 검사나 경찰관이 직무에 관한 죄를 범한 것이 증명된 때 등에 한해 예외적으로 재심이 가능하다.
법원이 재심 개시를 결정한다고 해서 바로 ‘무죄’가 확정되는 것도 아니다. 법조계의 한 관계자는 “재심 절차가 개시되더라도 최종 결정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통진당 해산' 재심까지 가면… 黃대표에 '영향'
이 전 의원 측은 법원이 재심 청구를 받아들으면 그를 근거로 헌재에 통진당 위헌·해산 결정 재심도 청구한다는 복안이다. 이는 차기 대권 주자 가운데 한 명으로 거론되는 황교안 현 자유한국당 대표와 직접 관련이 있다.
법무부·검찰은 2013∼2014년 헌재의 통진당 위헌정당해산심판 과정에서 ‘위헌’ 및 ‘해산’ 결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그야말로 최선을 다했다. 그 선두에 황교안 당시 법무장관이 있었다. 그는 법무부·검찰의 수장으로선 이례적으로 헌재 공개변론에 직접 출석해 통진당이 왜 위헌정당이며 해산돼야 하는지 연설했다.
2014년 12월 헌재에서 재판관 8(해산) 대 1(기각) 의견으로 위헌 및 해산 결정을 받아낸 황 대표는 박근혜정부로부터 공로를 인정받아 이듬해 법무장관에서 국무총리로 승진했다. 황 대표는 올해 초 한국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지지자들에게 “내가 통진당을 해산했다”고 말해 박수를 받기도 했다.
그 시절 통진당 해산을 위한 별도 태스크포스(TF)팀이 법무부 산하에 꾸려져 정점식(전 대검찰청 공안부장) 당시 검사장 등이 팀원으로 활약했다. 정 전 검사장은 지난 4월 한국당 국회의원(경남 통영·고성)으로 당선됐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