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 1주년을 앞두고 북한은 외무성 대변인을 통한 담화에서 “역사적인 6·12 조미공동성명 발표 한돌을 맞으며 미국은 마땅히 지난 1년간을 돌이켜보아야 하며 더 늦기 전에 어느 것이 올바른 전략적 선택으로 되는가를 숙고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북·미 정상회담 1주년이 아직 수일 남은 시점에서 북한이 이러한 논평을 내놓은 것은 이례적이다. 이는 이달 말에 개최될 오사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와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이 현재의 ‘선 비핵화’ 입장을 계속 고집할 경우, 북한이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 있음을 시사한 것이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미국이 지금의 계산법을 접고 새로운 계산법을 가지고 우리에게 다가서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과 맥을 같이한다.
6월에는 교착상태에 빠진 북·미 간 협상과 남북한 간 소통에 일대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외교행사가 한반도 주변에서 벌어질 예정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러시아 국빈방문에 이어 일본에서의 G20 정상회의, 이에 따른 미국과 중국 간 정상회담, 그리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한이 이어진다. 그런데 이들 외교행사를 지켜보니 현재 상황은 녹록지 않다. 하노이 북·미 정상회담 이후 미국과 북한은 서로 물러날 곳이 없다는 의지와 행동을 보여 왔다. 하지만 이러한 입장 표현이 성공이든 실패든 양국 간 협상이 막바지에 이르렀음을 예고하기도 한다. 이 반전의 기회를 놓치면 북한 비핵화 문제를 해결할 길을 찾기 어려워진다. 올해를 넘기면 양국은 각자의 길을 가게 되고, 이는 파국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증가시키게 된다.
문제는 하나씩 주고받는 식의 북한의 단계적 사고와 비핵화를 전제로 한 미국의 일괄타결 사고 간에 간극이 크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를 중재할 우리의 복안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의 역할은 양국을 협상 테이블에 앉히는 데 그치고, 그나마 협상 테이블로 이끄는 그간의 노력 속에서 양국의 신뢰를 상실하다 보니 이제는 그 역할이 오히려 줄어든 상황이다. 더군다나 현재 국제정세는 불안정한 상황이다. 세계질서를 이끌어 가는 미·중 간에 패권을 둘러싼 갈등이 심화되고 있고, 동북아 지역질서도 중·일 간 주도권 다툼으로 불안정한 국면이다. 그동안은 미·중 간 협력 관계가 중·일 간 갈등 관계를 압도해 협력의 전이양상이 벌어지는 안정적 상황이었다. 하지만 미·중관계의 갈등으로의 반전은 불안정한 상황을 유발하고 있다.
이상환 한국외국어대 교수 국제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