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제주 전 남편 살인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가해자인 고유정(36)씨의 정확한 범행 방법과 범행 동기 등을 밝히는데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고씨는 지난달 25일 오후 그의 전 남편 A씨(36)를 제주의 한 펜션에서 만나 그를 살해하고 27일쯤 이곳을 나왔다. 제주동부경찰서는 A씨 가족들의 신고를 받아 이달 1일 고씨를 긴급체포 했다. 이후 경찰은 고씨가 A씨를 살해 후 그의 사체를 훼손해 바다 등 여러 곳에 버렸다는 진술을 확보했다.
그러나 키 160cm, 몸무게 50kg 가량으로 보통 여성인 고씨가 살해한 A씨는 신장 180cm, 80kg으로 건장한 체격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신장은 20cm, 몸무게는 약 30kg 가까이 차이가 나는 A씨를 고씨 홀로 어떻게 제압한 뒤 범행을 저질렀는지 의문이 제기됐다.
앞서 경찰은 고씨가 약독물을 사용해 A씨를 살해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고씨가 자신의 휴대전화로 '니코틴 치사량' 등을 다수 검색한 것으로 나타나 이 같은 추측에 힘이 실렸다. 그러나 경찰이 고씨의 압수품에서 발견된 A씨 혈흔을 채취,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약독물 검사를 의뢰했으나 , '아무런 반응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결과를 전달받은 것으로 7일 밝혀졌다.
즉 신체조건의 현격한 차이로 고씨가 A씨를 물리적 힘으로 제압하기 어려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A씨에 대한 범행수법은 여전히 의문으로 남아 있다.
경찰관계자는 중앙일보에 "혈흔으로 약독물 존재 여부를 제대로 판별하려면 양이 충분해야 하는데, 현재 상황은 그렇지 못하다"라며 "국과수에서 재검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에 국과수에 경찰 내 혈흔 형태 분석 전문가 6명을 투입해 범행 장소로 이용된 펜션 내에 남아 있는 비산(飛散) 혈흔 형태를 분석, 범행의 형식에 대한 다양한 분석을 시도하고 있다.
이와 더불어 고씨가 A씨를 살해한 동기도 베일에 싸여 있다. 고씨는 수박을 자르던 도중 A씨와 다투다가 우발적으로 살해했다고 주장했으나 고씨가 A씨와 만나기 전 흉기와 톱, 쓰레기 종량제 봉투를 구입한 점을 미루어 봤을 때 살인을 계획하고 있었단 점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경찰 조사 결과 범행 동기에 대해선 밝혀진 바 없으나 A씨가 고씨 사이의 6세 아들에 대한 애착을 보였던 만큼 이와 관련 있을 것이란 추측이 이어지는 중이다.
피해자 유족은 7일 올린 청와대 국민청원에서 "형님은 늘 아들을 보고 싶어했고, 가사 소송을 신청하는 도중 고씨의 재혼 사실을 확인했다"며 "혹여 양부에게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지 않을까 해서 재판 속행을 요구했다"고 밝혔다. 이어서 "혹여 양부에게 아들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지 않을까 염려해 재판 속행을 요구했고, 소송의 연장선으로 아들을 보기 위해 고씨와 재회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A씨는 최근까지도 아들 양육비를 고씨에게 매달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고씨와 A씨는 2년 전 협의 이혼을 했었는데, A씨는 고씨의 반대로 보지 못한 아들을 최근 법원 면접교섭권 재판 결정에 따라 주기적으로 아들을 볼 기회를 얻어냈다. 실제 경찰 조사에 의한 CCTV(폐쇄회로)TV에서도 강씨는 아들을 만나기 위해 당시 펜션에 도착했고 고씨는 이튿날 아들을 집에 데려다준 후 홀로 펜션으로 돌아오는 모습이 포착됐다. 이에 A씨가 고씨와 2년 만의 첫 만남에서 살해를 당한 만큼, 이를 근거로 추측해봐야 한다는 분석이다.
고씨는 5일 제주지방경찰청 신상공개심의위원회 결정 때문에 신상공개가 결정됐다.
경찰은 이어서도 고씨가 여전히 우발적 범행을 주장하며 범행동기에 대해 입을 다물고 있어 현장검증을 벌이는 것은 무의미한 데다 실제 가능하지도 않다고 판단해 검찰과 조율 후 현장검증을 하지 않기로 했다.
여기에서 현장검증은 구체적인 범행 재연 상황을 검토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사정에 따라선 생략하는 경우도 있다. 경찰은 현재까지 압수한 증거물품과 수사내역 만으로도 혐의 입증에는 무리가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대신 오는 12일 고씨를 검찰에 송치하기로 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시신 수색과 범행동기 규명에 주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경찰은 고씨가 "시신을 바다에 버렸다"는 진술과 고씨가 지난달 28일 오후 제주항에서 완도행 여객선에 오른 후 1시간쯤 지나 훼손된 시신이 담긴 것으로 추정되는 봉지를 약 7분간 바다에 버리는 모습 등이 담긴 CCTV 영상을 토대로 지난 2일 해경에 수색협조를 요청했다.
해경은 함정 6척을 투입해 제주~완도 여객선 항로를 중심으로 수색했으나 8일 기준 아직까지 시신을 찾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이 고씨의 진술과 수사로 확인한 A씨 사체 유기장소는 제주~완도 해상과 전남 완도군 도로변, 경기도 김포시 아버지 소유의 집 인근 등 모두 세 곳으로 파악됐다.
장혜원 온라인 뉴스 기자 hodujang@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