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숲 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 사람들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고 / 그리고 그것이 내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로버트 프로스트, ‘가지 않은 길’ 중)
언제든 편히 갈 수 있는 곳도 좋지만, 가보지 않은 길은 더욱 특별하다. 인생을 빗댄 글이지만, 여행지를 선정할 때도 잘 들어맞는다. 일 년에 딱 열흘만 열리는 오름길과 이제 막 문을 연 역사공원….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한시적으로 개방하거나 새롭게 꾸려진 여행지 등 ‘숨은 관광지’ 사업을 추진한다. 지난달 국민들이 추천한 1236개의 관광지 중 관광전문가로 구성된 선정위원회를 통해 6개 관광지를 엄선했다.
◆일 년에 딱 한 달… 울산 ‘회야댐생태습지’
울산 울주군 회야댐생태습지는 노방산이 마주 보이는 통천마을 앞 강변에 있다. 습지를 끼고 돌아가는 강줄기가 안동 하회마을 못지않게 멋진 곳이다. 하지만 이 기름진 땅은 1982년 회야댐이 건설된 이후 잡초로 무성했다. 통천마을 일대가 상수원 보호구역으로 지정되면서 주민이 인근 옥동과 무거동으로 이주한 탓이다. 주인 잃은 논밭에 새 생명이 싹튼 건 2003년 이곳에 친환경 정화시설을 만들기로 결정하면서다. 6년 뒤 주인 잃고 헛헛하던 땅이 연과 갈대, 부들이 가득한 습지로 다시 태어났다. 7월21일부터 단 한 달 동안만 연꽃이 만발하는 회야댐생태습지를 방문할 수 있다. 회야댐생태습지 탐방은 통천초소 안 만남의광장에서 생태습지까지 왕복 4㎞ 코스이다.
◆‘국내 최초’ 타이틀… ‘서울식물원’ ‘식민지역사박물관’
◆열흘만 열리는 비밀 원시림… 제주 ‘거문오름 용암길’
오름 여행은 화산섬 제주를 오롯이 느끼는 방법이다. 360여 개 오름 중에서 거문오름은 특별하다. 천연기념물 444호로 지정·보호될 뿐만 아니라,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재됐다. 거문오름에서도 용암이 흐른 길을 따라 이어진 ‘용암길’은 1년 중 거문오름국제트레킹이 진행되는 기간(7월20∼28일)에만 공개된다. 사람 발길이 닫지 않은 원시림에서 신비로운 거문오름을 탐방하는 절호의 기회다. 용암길에는 붕괴 도랑과 용암 함몰구 등 독특한 지형이 발달했으며, 식나무와 붓순나무 등 희귀 식물이 군락을 이룬다. 숯가마 터와 태평양전쟁 당시 일본군이 만든 갱도진지 등 역사유적도 볼 수 있다. 용암길을 걷고 나면 타임머신을 타고 수만년 전으로 여행을 다녀온 기분이 든다.
◆폐허에서 예술 단지로… 전주 ‘팔복예술공장’
전주 팔복예술공장은 옛 건물을 재생한 예술 창작소이자 문화 플랫폼이다. 원래 카세트테이프를 만드는 공장이었는데, 25년 동안 방치되다가 2016년 문화체육관광부 ‘산업단지 및 폐산업시설 문화재생 사업’에 선정돼 기지개를 켰다. 2년 가까운 준비 기간을 거쳐 2018년 3월 A동 중심으로 개관했다. 팔복예술공장 A동은 2층 건물이다. 1층에는 입주 작가의 스튜디오와 카페 ‘써니’가 있다. ‘써니’는 옛 공장 ‘썬전자’와 노동자 소식지 ‘햇살’에서 따온 이름이다. 전시는 주로 2층 전시장과 옥상에서 이뤄진다. 오가는 통로에서 공장 시절 흔적이나 기억이 담긴 작품을 찾아보는 재미를 느낄 수 있다. 또 2층은 컨테이너 브리지로 B동 입구와 연결되는데, 그 아래를 받치는 컨테이너는 만화책방과 그림방이다.
◆갓 개장한 ‘연천고랑포구역사공원’
연천 고랑포는 임진강을 통해 물자교류의 중심 역할을 한 포구였다. 6·25전쟁과 분단을 거치며 쇠락해 나루터의 흔적조차 남지 않았지만 옛터에 온기를 불어넣는 작업은 진행 중이다. 임진강 포구의 과거를 엿볼 수 있는 연천고랑포구역사공원이 지난달 10일 문을 열었다. 연천군 장남면에 자리한 공원은 고랑포 일대의 역사를 재현한 공간이다. 개성과 서울을 잇는 교통 요지였던 고랑포구는 1930년대에 백화점 분점과 우시장 등이 들어서 북적였다. 1층 전시관에서 고랑포의 옛 모습을 가상현실(VR)과 증강현실(AR) 체험으로 흥미롭게 보여준다. ‘삶의 찰나’ 공간에는 1930년대 고랑포구와 화신백화점 분점·여관·생선 가게 등 저잣거리를 재현했다. ‘오감의 찰나’ 공간은 주상절리, 임진강 물길 등을 형상화한 놀이터다. 공원 앞마당에는 한국전쟁 당시 연천 전투에 참가한 군마 ‘레클리스’ 동상이 있다.
◆뜨는 예술 공간… ‘대구예술발전소’ ‘수창청춘맨숀’
대구 수창동에는 과거 전매청의 흔적인 연초제조창 별관 창고와 사택이 있다. 리노베이션을 거쳐 대구예술발전소와 수창청춘맨숀으로 다시 태어났다. 연초제조창 별관 창고로 쓰인 대구예술발전소에서는 입주 작가들이 왕성한 창작 활동을 하고, 시민과 문화 공유를 꿈꾼다. 1∼2층에 마련된 전시 공간과 건물 곳곳에 예술 작품이 있다. ‘문 플라워’ 앞에서 인생 사진도 찍어보자. 연초제조창 사택으로 쓰인 수창청춘맨숀은 청년 작가들의 톡톡 튀는 예술 감각을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사택의 방과 거실, 화장실 등이 전시 공간이자 공연장이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