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돼지열병(ASF) 유입을 차단하기 위해 정부가 비무장지대(DMZ) 일대의 야생 멧돼지 사살에 나서기로 하자 동물보호단체가 멧돼지의 무분별한 사살·포획을 중단하라며 맞서고 있다. 현재 동아시아에 번진 ASF는 멧돼지가 주범이 아닌데다 인위적인 포획은 멧돼지 행동권을 더 넓힐 수 있다 게 이들의 주장이다.
10일 야생동물연합은 성명을 내고 “아시아에 퍼지고 있는 ASF가 사람에 의해 전파되고 있는 것이 명확함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근거도 없이 멧돼지를 전파 원인으로 몰아붙이고 애꿎은 멧돼지 포획을 증가고 있다”며 “유엔식량농업기구(FAO)도 가축과 축산물 방역을 권고하지 멧돼지 포획을 언급하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들에 따르면 ASF는 치사율이 워낙 높아 야생에서 전파력이 낮다. 지난해 유럽식품안전청(EFSA) 연구에서 멧돼지의 전파 속도는 1년에 8∼17㎞에 불과할 정도로 매우 느리게 나타났다.
2014∼2018년 각국의 사육돼지와 멧돼지 발병건수를 보면, 리투아니아는 멧돼지 발병건수가 6024건으로 가장 많았지만, 사육돼지 발병건수는 118건에 머물렀다. 반면, 루마니아는 멧돼지 155마리에서 발병하는데 그쳤는데 사육돼지는 1073건으로 가장 많은 발병건수를 기록했다. 멧돼지의 발병이 반드시 사육돼지 발병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최근 중국에서 확인된 ASF의 발생 원인도 ‘차량 및 작업자를 통한 전파’가 46%, ‘오염된 먹이’ 34%, ‘감염된 돼지 및 부산물의 이동’ 19%를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멧돼지에 의한 전파가 확실하지 않은 상황에서 성급하게 포획에 나설 경우 도리어 확산 위험을 높일 수 있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개체수를 낮추기 위해 사냥, 포획, 유인을 할 경우 위협을 느낀 멧돼지가 행동반경을 넓히고, 야간행동 빈도를 늘려 질병 확산에 더 유리한 상황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범준 야생동물연합 국장은 “유럽의 접경지역 멧돼지 지침을 보면 펜스를 통한 물리적 방어가 최선이라고 돼있다”며 “멧돼지를 포획하겠다고 하는 것은 나중에 확산됐을 때 방역 실패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에 불과하다”고 비판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