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A(32·여)씨는 지난달 회사 성희롱 예방교육을 듣던 중 불쾌했던 기억을 지울 수가 없다. 전문강사라고 나온 50대 남성이 강의에서 “남자는 짐승이라 성욕을 제어할 수 없다” “나도 여직원이 터치하면 나한테 마음이 있나 설렌다”는 등 황당한 소리를 늘어놨기 때문이다. 급기야 강사는 “여자분은 꽃뱀 되지 않게 조심하라”는 막말까지 뱉었다.
직장인 B(30·여)씨는 성희롱 예방교육 1시간 중 대부분을 주제와 무관한 전신주와 전기 사업에 대한 강의를 들어야만 했다. 전기산업 관련업에 종사하는 B씨는 “강사가 시종 창문 밖 전신주를 가리키며 특정 전선사업 이야기만 해댔다”고 말했다. 성희롱 예방과는 전혀 관련 없는 내용으로 채워진 강의를 들은 그는 시간만 낭비한 느낌이었다고 울분을 토했다.
10일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고용부 지정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 양성기관은 현재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와 민주노총 2곳뿐이다.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의 경우 19.5시간으로 이뤄진 강의를 듣고, 10분 정도의 시연 강의 동영상을 제출하는 교육과정으로 구성돼 있다. 이틀 정도만 시간을 투자하면 법정의무교육 강사가 될 수 있는 셈이다. 고용부 가이드라인에서도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가 되기 위해선 16시간 이상 교육을 받아야 한다고만 규정하고 있어서 굳이 깊이 있는 교육과정을 짤 필요도 없다.
정부가 관리하지 않는 비지정 양성기관의 커리큘럼은 더 간소하다. 30여만원의 돈을 내고 적게는 8시간, 많게는 16시간만 투자하면 강사 수료증이 나온다. 이마저도 강의 절반은 인터넷 강의로 때우는 식이다. 이들은 민간자격증을 만들어 배부하는 방식으로 기관을 운영한다. 성희롱 예방교육을 이수해야 한다는 규정만 있고, 강사의 자격에 대한 법적 근거가 없는 탓에 강사 및 강의의 질을 관리할 방법이 없다.
상당수 기관들은 고용부의 눈을 피해 ‘고용노동부 지정기관’이라며 허위광고를 해 예비강사들을 모집하고 있다. 고용부 관계자는 “(강사 자격 부여 기준을 포함한) 가이드라인 등에 대해 내부적으로 수정을 검토하고 있다”며 “민간기관에서 고용부 지정기관이라고 허위광고를 하고 있는 것에 대해서는 구두로 수정을 요구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고용부 지정 성희롱 예방교육 기관에도 자질이 의심스러운 강사들이 다수 배치돼 있다. 올해 1월 기준 고용부 지정 성희롱 예방교육 기관은 102곳이다. 이들 기관은 지정을 받기 위해 예방교육 강사 보유현황과 사용 교재 등을 증명서류로 제출하는데, 적정 수준만 채우고 나머지는 민간자격증 보유 강사들로 채워 현장에 내보내는 식으로 운영하고 있다. 심지어 성희롱 예방교육을 빙자해 보험이나 건강식품 홍보 등 ‘자기장사’를 하는 경우까지 있다. 이 때문에 신창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성희롱 예방교육 시 상품 홍보를 금지하는 내용의 법안까지 입안해 놓은 상태다.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가 다른 분야 강의까지 뛰는 ‘투잡’ 사례도 있다. 성희롱 예방교육처럼 사업장 내 법정 의무교육으로 지정된 개인정보보호 교육이 대표적이다. 성희롱과 전혀 다른 분야이지만 강사 자격 취득이 용이해 두 가지 자격증을 함께 따 교육하는 것이다. 개인정보보호 교육도 다수 민간기관을 통해 약 20만원에 6시간 정도만 투자하면 강사 양성교육 수료증을 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성희롱 예방교육 강사 양성 프로그램의 질과 양을 강화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강제상 경희대 교수(행정학)는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기 위해서는 심리적, 법적으로 두루 전문성을 갖춰야 한다”고 말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도 “시간과 내용 측면에서 강사 양성과정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당국이 나서야 하고, 교육현장에서 성희롱 등으로 피해를 받는 일이 없도록 후속관리 프로그램도 만들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청윤 기자 pro-verb@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