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본인이 만든 ‘대법원장 구술채록’서 제외

후배들 위한 조언 등 기록 취지 / 2015년 도입… 2019년 다섯번째 / 2019년 대상자 포함 전망 제기됐지만 / 사법농단 의혹 여파로 빠진듯 / 박병대·고영한도 대상에 불포함 / 앞으로 계속 제외될 가능성도

양승태 전 대법원장(15대 대법원장)이 도입해 올해로 5회째를 맞는 역대 대법원장 구술채록(입으로 말한 기록이나 녹음) 사업의 올해 대상자에서 자신이 제외됐다. 전임자인 이용훈 14대 대법원장까지 구술사업이 진행(2016년 채록)돼 올해 양 전 대법원장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왔지만 정작 사업을 도입한 당사자임에도 포함되지 못한 셈이다.

11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은 올해로 다섯 번째로 맞는 ‘역대 대법원장 등 법원 주요인사 구술채록 사업’에 양 전 대법원장을 제외하기로 했다. 대법원은 지난달까지 올해 구술채록 사업을 진행할 용역 선정 절차에 나섰다. 실무를 맡은 법원도서관 관계자는 이날 “올해의 경우 전직 대법관 3명이 대상자로 결정됐고,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대상자에 포함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양 전 대법원장이 역대 대법원장 구술채록 사업을 도입·실시한 시점은 2015년이다. 사업 도입 이후 생존한 전직 대법원장 6명 중 양 전 대법원장 직전 대법원장을 지낸 이용훈 전 대법원장까지 작업이 진행됐다. 김용철(9대)·윤관(12대) 전 대법원장이 참여했고, 김덕주(11대)·최종영(13대) 전 대법원장은 본인이 고사했다. 양 전 대법원장은 본인이 해당 사업을 도입한 인물이고 전임 대법원장까지 구술채록이 이뤄진 만큼 곧 대상자가 되는 순번이었다.

역대 대법원장 구술채록 사업은 대법원장 등 고위 법관들이 직접 사법발전·법원개혁 방안과 후배 법조인들에 대한 조언 등에 대해 진술함으로써 그 내용을 기록으로 남겨 후배 판사들이 경험을 공유할 수 있도록 한다는 취지에서 진행됐다. 대법원은 2015년 도입 당시 역대 대법원장을 구술작업 1차 대상자로 우선 진행하고, 향후 대법관까지 그 대상을 확대한다는 계획이었다. 지금까지 김용철 전 대법원장 등 역대 대법원장 3명과 박일환 전 대법관과 권오곤 전 유고전범재판소(ICTY) 재판관 등 고위 법관 8명 등 총 11명이 구술작업 대상자로 선정돼 사업이 진행됐다.

올해 대상자에서 제외된 양 전 대법원장은 내년은 물론 앞으로도 제외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법원도서관은 지난해 사업계획안에서 “2017년 퇴임한 양 전 대법원장과 해당 시기 전 법원행정처장(박병대, 고영한)의 구술채록은 (양승태) 대법원장 퇴임 3년 후 시작하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사료된다”고 명시했다. 그러나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사법농단’ 의혹이 제기되면서 대법원의 입장이 곤란해졌다. 이에 대해 법원도서관 관계자는 “구술채록 사업은 대법원장의 일대기와 살아온 이야기를 듣는 것이라 ‘사법농단’ 의혹 사태로 반드시 대상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말하긴 어렵다”면서도 “(양 전 대법원장과 박·고 전 대법관 선정 여부는) 향후 형사재판 결과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삼정부 출범 직후 공직자 재산공개 파문으로 법복을 벗은 김덕주 전 대법원장의 경우에는 스스로 구술채록 사업을 위한 인터뷰를 고사했다.

법조계에서는 양 전 대법원장을 구술채록 대상자로 선정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사법발전 방안과 후배 법조인들에 대한 조언을 담은 사업 취지에 적합하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재경지법의 한 판사는 “사법농단 의혹으로 국민의 사법불신을 키운 사람들이 사법행정과 법원개혁을 이야기하고, 그것을 대법원이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염유섭·유지혜 기자 yuseob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