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사의 획기적인 발전은 선생님(이 여사) 시대에 이뤄졌어요. 여성가족부를 신설하고 성희롱 예방교육을 실시하는 등 그분 덕분에 여성과 관련된 법과 제도가 정비됐죠.”
지난 10일 밤 소천한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에 대해 동국대 백경남(여·78·사진) 명예교수는 12일 이같이 회고했다. 이 여사는 백 교수가 대학 졸업 후 첫 인연을 맺은 ‘선배 여성운동가’였다. 두 사람은 1960년대 여성문제연구회에서 1세대 여성운동가로서 함께 일했고 지난해까지 안부를 주고받았다.
백 교수는 이날 세계일보와의 전화통화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여성관에는 선생님이 큰 영향을 미쳤다”며 “그분은 평생 여성과 민주주의, 인권, 평화를 위해 헌신하셨다”고 강조했다.
백 교수는 국민의정부 시절 대통령 직속 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을 맡아 김대중정부의 여성정책을 주도했다. 그는 “제가 추진했던 모든 정책은 이 여사에게서 나온 것”이라며 “여성 정책의 현대적 기초가 그때 만들어졌고 그분은 여성계의 획기적인 한 획을 그었다”고 평가했다.
이 여사가 소천한 다음 날 백 교수도 빈소를 찾았다. 옛 동지들을 찾아봤지만 남은 사람이 거의 없었다. 이 여사의 제자에게 전화를 걸었으나 “노환 때문에 어렵다”는 답변을 들었다. 그는 “그만큼 세월이 많이 흐른 거겠죠”라며 “선생님은 제게 만큼은 모든 세대를 아우른 최고의 여성운동가예요. 정치 발전의 굴곡이 없었다면 진작에 더 높은 평가를 받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여사의 조문 둘째날인 이날 오전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비롯해 김영삼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 이순자 여사 등 전직 대통령 가족들도 빈소를 찾았다.
이 여사의 공동 장례위원장을 맡은 장상 전 국무총리 서리는 빈소가 차려진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이 여사님이 미투 운동에 대해 ‘여성들이 위축될 수 있으니 더 당당하게 했으면 좋겠다’고 했다고 한다”며 “여사님은 여성운동의 선각자”라고 말했다.
이현미·곽은산 기자 engin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