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는 크게 유행했지만 이제는 거의 듣기 힘들어진 표현 중에 ‘미씨(missy)족’이라는 말이 있다. 기억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겠지만, 이 표현은 1990년대 초에 등장해서 큰 인기를 모았다. ‘결혼했지만 결혼한 사람처럼 꾸미지 않은 여성’을 가리키는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당시까지의 한국의 풍습을 알아야 한다. 여성이 결혼하면 뒤로 길게 땋은 머리를 쪽 찐 머리로 바꾸던 조선시대에서 오랜 시간이 흘렀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여성이 결혼하면 헤어스타일부터 바꾸는 게 일반적이었다. 긴 머리, 생머리를 파마, 특히 뽀글이 파마로 바꾸는 것이 바로 ‘결혼한 여자’임을 알리는 표시였다.
이게 언제 적 얘기냐 싶지만, 30년도 채 되지 않은 얘기다. 상투를 잘라버린 단발령 이후로 남자는 결혼해도 외모에 변화가 없는데, 왜 여자만 외모를 바꿔야 했을까? 오랜 세월 동안 당연하게 여겨지던 이 관습에 1990년대 초에 서울을 중심으로 여성들이 반기를 들기 시작했고, 결혼 후에도 헤어스타일을 바꾸지 않는 사람들이 눈에 띄게 늘어나자 한국의 보수언론은 그들에게 “결혼하고도 결혼 안 한 척한다”는 뜻으로 미씨족이라는 꼬리표를 붙였다. 하지만 ‘결혼한 여성의 헤어스타일’이 사라지면서 미씨족이라는 표현도 빠르게 자취를 감췄다.
그렇다면 그는 왜 마리아를 아들보다 젊게 묘사했을까? 시대를 바꿔 2011년으로 가보자. 당시 미국 가톨릭 교단은 작지만 의미 있는 논란에 휘말렸다. 가톨릭과 개신교를 막론하고 가장 권위 있는 성경 번역본으로 알려진 킹제임스본(KJV, 흠정역이라고도 한다)의 탄생 400주년을 맞아, 현대인들이 이해하기 쉬운 표현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버진(virgin), 즉 처녀라는 단어를 ‘젊은 여성’(young woman)으로 바꾸자는 주장이 논쟁을 불러일으킨 것이다.
기독교에서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처녀인 상태에서, 즉 성관계를 하지 않고 신의 아이를 잉태했다고 해서 ‘동정녀(처녀) 마리아’라고 불러왔는데, 그 표현이 정확하지도 않고 현대적인 정서에도 맞지 않으니 바꾸자는 주장이었다. 마리아에 대한 예언이 등장하는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는데, 그 대목에서 사용된 히브리어 ‘알마’는 처녀라기보다는 젊은 여성을 가리키는 말이었으니 그냥 ‘젊은 여자 마리아’로 바꾸자는 제안을 했던 것이다.
사실 젊은 여성과 ‘성관계를 가진 적이 없는 여성’이라는 의미의 처녀는 많은 사회에서 동의어처럼 사용되어왔다. 나이 든 사람들이 “다 큰 처녀가 행실이 왜 그래?”하고 꾸짖을 때 사용하는 처녀는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성이지, 성관계 유무를 지칭하는 말이 아니다. 킹제임스본 성경의 개정을 주장하는 사람들도 그런 이유로 바꾸자고 했던 것이다.
하지만 동정녀 마리아를 젊은 여성 마리아로 바꾸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고, 큰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그도 그럴 것이 히브리어 성경 속 알마를 ‘처녀’로 번역한 후 기독교에서는 마리아의 처녀성을 거의 집착에 가깝게 주장했을 뿐 아니라, 성경에는 등장하지 않는 이야기를 만들어내어 보호해왔기 때문이다.
그런 전통은 개신교보다 구교의 가톨릭에서 훨씬 심했다. 가령 성경에는 “예수의 동생들”이라는 표현이 등장한다. 이 표현을 개신교에서는 마리아가 신의 아들인 예수를 낳은 후, 남편인 요셉과의 사이에서 아들들을 더 낳았다고 이해하지만, 로마 가톨릭 전통은 그렇지 않다. 성모마리아는 예수를 임신했을 때만 처녀였던 것이 아니라 죽을 때까지 처녀였다는, 소위 ‘영원한 처녀성’이라는 이론을 믿는다.
그렇다면 “예수의 동생들은 어떻게 생긴 거냐”는 질문이 나온다. 이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 중세 가톨릭 전통에서는 그들이 예수의 동생들이 아니라 형들이라고 해석한다. 영어 단어 브러더(brother)는 형과 동생을 구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즉, 성모마리아가 요셉과 결혼했을 때 요셉은 이미 결혼해서 자식을 낳고 아내와 사별한 나이 든 남성이었고, 그렇게 재혼해서 데려온 사람들이 예수의 “형들”이라는 것이다.
가톨릭 전통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고, 요셉이 결혼 후에도 마리아와 성관계를 갖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결혼 당시에 나이 90에 가까운 노인이었다고 설명한다. 15세기 플랑드르 지역에서 활동한 화가 로베르 캉팽의 유명한 작품인 메로데 제단화(1427)는 이 같은 배경 지식을 가지고 ‘읽어야’ 하는 작품이다. 화면 중앙에서는 젊은 마리아가 천사로부터 신의 아들을 잉태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있고, 오른쪽에서는 수염이 하얀 한 노인이 목공일을 하고 있는데, 그 노인이 바로 가톨릭 전통에서 이야기하는 마리아의 노인 남편 요셉이다.
다시 피에타로 돌아가보자. 피에타뿐 아니라, 당시 많은 예술작품이 성모의 ‘영원한 처녀성’을 표현하기 위해 마리아를 젊은 여성으로 묘사했고, 심지어 나이 들어 죽어갈 때도 할아버지가 된 사도들에게 둘러싸인 젊은 여성으로 그려졌다. 중세까지 거슬러 올라갈 필요 없이 현재의 교황도 2017년에 “성모마리아는 죄를 짓지 않았기 때문에 영원히 젊은 것”이라는 설교를 했을 만큼 여성의 처녀성은 죄 없음, 더 나아가 젊음과 동일시되어 왔다.
물론 이는 남성과 성관계를 한 여성을 더 이상 젊은 여성이 아니라는 말로 극히 차별적인 말이기도 하다. 결국 결혼 후에도 파마를 하지 않고 생머리를 유지하는 여성들을 두고 굳이 ‘미씨’라고 불렸던 이유는 처녀(miss)가 아닌 여성이 젊어보여서는 안 되지 않느냐는 남성중심적인 사회의 오랜 편견 때문이다. 이제는 그 표현을 듣기 힘들어졌다는 것도 진보라면 진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