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88년 인상주의의 마지막 전시회에서 조르주 쇠라의 ‘신인상주의 선언’이 있었다. 쇠라는 인상주의의 색채 효과를 이어갔지만 과학적인 근거로 그림을 그리려 했다. 대표적 인상주의자인 모네의 색채분할법이 본능적으로 이뤄진다고 보고, 색채 분할이 과학적 이론을 근거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색조나 색의 대비와 보색 관계를 정밀하게 검토해서 나타내고, 채색에서도 색 점의 크기나 비중, 색으로 인한 구도상의 질서까지 고려하려 했다.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를 보면, 형태에서 윤곽이 드러나고 거리감을 나타내는 구성도 볼 수 있다. 쇠라가 색 점을 계산적이며 조직적으로 사용해 형태감을 살려냈기 때문이다. 전경 오른쪽의 여인과 남자에서 시작해 왼쪽의 반쯤 누운 남자가 있는 그룹을 거치고, 파라솔을 들고 앉은 여인과 소녀가 있는 곳으로 이동하는 지그재그식 구성으로 거리감도 만들어냈다. 그 구성이 계속 이어지며 강가의 인물과 멀리 수평선으로까지 시선을 이끌면서 화면 전체에 깊이 있는 공간을 만들어 냈다.
신인상주의가 나타났던 당시에는 과학적 낙관주의가 유행했다. 화학에서 원소주기율표가 발명되면서 사람들은 물질의 구성단위를 완벽하게 파악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졌고, 과학의 힘을 절대적으로 신뢰했다. 쇠라는 이런 과학적 업적에 고무돼 관찰된 장면을 단위 요소로 구성하는 그림의 공식을 만들고 싶어 했다. 색 점의 크기나 색채 사용법을 계산하고, 색조 조절로 형태와 거리감을 나타내는 시도를 통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