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재 절도 들통나면 “亡者에게 샀다”… 진실 규명 곤란

‘선의취득’ 주장하며 수사방해 일쑤 / 신안 앞바다 도자기 유물 40년 은닉범 / 체포돼자 어머니 유품이라 말해 발뺌 / 만국전도·숭례문 현판 사례등도 비슷 / 출처 알 수 있는 낙관 등 인위적 훼손 / 지정문화재·도난 신고 땐 인정 안 돼 / 해외 문화재 환수때도 선의취득 영향

문화재 절도사건에는 흔한 등장인물이 있다. 세상을 떠난 ‘망자’(亡者)다. 이들은 도난문화재의 출처로 종종 언급된다. 지난 13일 공개된 신안선 유물 회수 과정에서도 어김없이 거론됐다. 이 사건에서는 피의자 A씨의 죽은 어머니가 등장했다. A씨는 갖고 있던 유물을 어머니의 유품이라고 주장했다. 전문가들이 보기에는 뻔한 거짓말인데, 문화재 절도범들은 왜 망자를 들먹이며 자신의 범죄를 발뺌하려 할까. 

 

‘선의취득’을 주장하며 당국의 수사를 방해하려는 목적이다. 도난문화재인 줄 모르고 샀다며 무죄를 강변하면서, 그 출처로 죽은 사람을 대면 자신의 주장만 남을 뿐 이를 깨기 위한 수사가 진척되기 힘들다는 점을 노리는 것이다. 선의취득은 국내의 문화재 절도사건뿐만 아니라 불법적으로 빠져나간 해외 소재 우리 문화재의 환수 방식을 결정하는 변수로도 종종 작용한다. 

 

도난을 당했다 오랜 수사 끝에 회수한 신안선 도자기 유물. 문화재 절도범들은 무죄를 주장하기 위해 도난문화재인 줄 모르고 샀다며 선의취득을 주장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문화재청 제공

◆도굴된 해저 유물이 어머니의 유품(?) 

 

A씨는 전남 신안군 증도 앞바다 신안해저유물 매장해역(사적 274호)에서 1980년대에 도굴된 유물을 취득해 40년간 숨겨온 혐의로 검거됐다. 문화재청 사범단속반이 회수한 유물은 중국 도자기 57점. 사범단속반은 그가 잠수부를 고용해 도굴된 신안선 유물을 자신의 집에 감춰 온 것으로 판단했다. 최근 경제적인 어려움을 겪으면서 유물을 국외로 빼돌려 돈을 마련하려다 덜미가 잡혔다. 체포된 A씨는 갖고 있던 유물을 어머니의 유품이라고 주장했다. 지난달 회수 사실이 발표된 만국전도(보물 1008호), 숭례문 현판 목판 사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피의자들은 문화재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죽은 고등학교 동창 등을 들먹였다. 

 

문화재 절도범들이 흔히 하는 거짓말임이 분명하지만 제대로 된 처벌을 하기 위해서는 이를 반박할 확실한 증거를 잡아야 한다. 숭례문 현판 사건의 경우 피의자 B씨가 세상을 떠난 판매자의 이름과 연령대를 댔는데, 수사진은 같은 이름을 가진 비슷한 연령대 200여명을 파악해 일일이 확인한 끝에 사건과 관련이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사범단속반 한상진 반장은 “망자를 유물 출처로 주장하는 피의자의 주장을 깨기 위한 정황증거를 많이 수집해야 한다. 피의자가 어떤 유물을 갖고 있는지를 알 만한 주변 사람들을 탐문해 거짓말임을 파악할 수 있는 경우가 많다”며 “예전에는 문화재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을 댔는데, 요즘에는 전혀 무관한 가족, 친구, 동창 등을 들먹이는 이들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숭례문 현판 목판. 문화재청 제공
만국전도. 문화재청 제공

선의취득은 문화재 절도범들이 결백을 주장하는 근거가 되지만 그 자체가 인정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첫째, 해당 유물이 지정문화재인 사례가 그렇다. A씨의 경우 국가지정문화재인 사적에서 범죄를 저질렀기 때문에 선의취득 주장이 먹힐 수 없다. 둘째, 도난신고가 된 유물일 경우다. 문화재청은 신고된 도난문화재를 홈페이지에 공고하고 있다. 셋째, 출처를 알 수 있는 낙관 등의 정보를 인위적으로 훼손했을 때다. 전적류 같은 유물에는 소장처를 표시한 낙관을 찍어놓은 경우가 많은데 이를 지워 자기 것인 양 꾸미는 것이다. 

 

◆선의취득 인정 여부에 달라진 해외문화재 환수  

 

2017년 일본에서 ‘이선제 묘지(墓誌·죽은 사람의 생애를 돌이나 도자기에 새겨 넣어 무덤에 함께 매장한 기록물)’가 돌아왔다. 도굴범들이 1998년 일본으로 빼돌린 것인데 묘지의 귀향은 ‘기증’의 형식이었다. 

 

같은 해 조선왕실의 ‘문정왕후 어보’, ‘현종 어보’가 환수됐다. 6·25전쟁을 전후한 시점에 유출된 것으로 보이는 유물이었다. 미국 당국은 두 어보를 압수한 뒤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했을 때 돌려줬다.  

 

이선제 묘지와 어보들은 불법적 방식으로 한국을 빠져나간 과정은 같은데, 환수 방식은 소장자의 선의에 따른 기증과 압수 뒤 반환으로 달랐다. 이런 차이를 가른 것이 일본, 미국의 선의취득의 인정 여부였다.

 

일본의 법률은 선의취득을 인정한다. 이 때문에 묘지가 불법적으로 유출된 것이 분명했지만 선의취득을 주장하는 당시 일본인 소장자를 설득해 기증의 형식을 빌려 환수할 수밖에 없었다. 만약 소장자가 기증을 거부했다면 묘지 환수를 두고 공방이 오랫동안 진행되었을 것이다.

 

미국은 선의취득을 인정하지 않는다. 외부 반출이 엄격히 금지된 왕실 유물인 어보가 시중에서 거래될 수 없기 때문에 불법유출이 명백했고, 미국 당국도 이를 인정해 압수한 뒤 우리에게 돌려준 것이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