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년대의 낙관성
‘자유결혼’은 개성 강한 딸들의 연애사를 담은 영화다. 1958년에 국제극장에서 개봉했다. 전작 ‘시집 가는 날’(1956)로 제4회 아시아영화제 희극 부문을 수상하며 코미디의 감각을 보여 준 바 있는 이병일 감독이 연출했다. 1957년 11월 국립극장에서 공연된 하유상의 희곡 ‘딸들은 자유연애를 구가하다’가 원작이다. 김지헌 작가가 각색했고, 이병일 감독이 제작도 맡았다.
◆웃음의 시대성
개봉 당시 이 작품은 “어색하지 않게 웃을 수 있는 즐거운 홈드라마(가정극)”, “지저분하고 메스꺼운 눈물이 없는 건전한 웃음”의 영화로 소개됐다. 어떤 논객은 “교양, 세련, 해학”을 갖춘 “불란서제 상등품 코메디”와 같다고도 했고, 어떤 이는 “페이소스(pathos·애수)와 유머를 칵텔한(함께 섞은: 필자 주) 국산 상등품 멜로드라마”라고도 했다. 멜로드라마에 웃음을 더했다는 것인데, 당시에는 구체적으로 명명되지 않았지만 이 영화의 장르를 굳이 구분하자면 로맨틱 코미디에 가깝다.
이 영화가 보여 주는 웃음의 감각이야말로 이전 시대에는 쉽게 보지 못했던, 1950년대 한국영화에 새로이 도입된 정서적 풍경이라 할 만한 것이다. 웃음이 필요하다 해서 웃음의 서사가 만들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 어느 때보다 웃음의 위안이 필요했던 식민지 시기부터 해방 공간에 이르기까지 오히려 코미디 장르가 거의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그러한 사정을 말해 준다. 코미디는 서로 다른 쪽 가치를 대변하는 인물까지도 관용하면서 이상적인 조화를 성취하는 장르인데, 이런 관용과 조화는 낙관적 비전이 작동하지 않으면 구현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전 시대에 코미디 장르가 만들어질 수 없었던 것은 감독 개인의 역량과는 무관하다는 것이다. 웃음의 정서를 전면에 내건 장편 서사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때를 더 기다려야 했다는 것인데, 그것을 가능하게 하는 통합의 세계관이 가능해지기 시작한 때가 1950년대 중반이라 할 수 있다.
◆민주주의와 가족
웃음은 주로 솔직함에서 나온다. 인물들은 눈치 보거나 우물쭈물하는 법이 없다. 거리낌 없이 자유롭게 자기 속내와 생각들을 털어놓는다. 자유분방하게 생각과 느낌들을 드러내는 말들은 신선하고 맛깔나다. 물론 서사적 흐름과는 별도로 흐르는 경우가 있어 잡담처럼 느껴질 때도 있다. 덕분에 한국영화사에서 가장 말이 많고 다소 시끄럽기까지 한 영화가 됐지만, 그조차도 이 영화를 시대의 풍속도가 되게 만드는 힘이라 할 수 있다.
그와 관련해 특히 인상적인 부분은 시시각각으로 벌어지는 말들의 경연장이다. 젊은 남녀가 언쟁을 벌이고, 남편과 아내가 서로의 견해를 주고받으며, 아버지와 딸이 논쟁을 한다. 대화 중에 어느 한 사람의 주장이 상대방을 누르거나 일방적으로 끌고 가는 일은 없다. 남녀노소가 동등하게 발언권을 가진다. 또한 어른이나 스승처럼 권위 있는 인물의 말이 결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는다. 딸의 미래를 두고 잔소리하는 어머니가 있지만 그건 그저 잔소리일 뿐이다.
어른들 사이에서 주눅 들지 않고 자신의 의사를 분명히 밝히는 막내 광식은 특히나 눈길이 가는 인물이다. 전 시대라면 그는 말대꾸하는 버릇없는 아이에 불과했겠지만, 이 영화에서 그는 유머 감각을 갖춘 아이이자 경우에 따라서는 ‘제 의지대로 행동’하는 ‘훌륭한 아이’로도 얘기된다. 그의 모습은 1954년 잡지 ‘학원’에 연재된 조흔파의 명랑 소설 ‘얄개전’ 속 주인공과 많이 닮아 있다.
팽팽한 언어들의 격전장이 되고 있다는 사실이 궁극적으로 보여 주는 것은 민주주의적 사고다. 그리고 가족 관계가 민주주의적인 기초 위에서 다시 생각되기 시작하던 당대 시대정신을 반영한다. 고 박사 가족에게는 이렇다 할 가부장적 위계가 존재하지 않는다. 가장 어른격인 할아버지가 클라이맥스에 등장하지만 그가 권위로 가족을 제압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가족 구성원 모두의 견해를 묻고 그것을 종합적으로 수용하는 것이 그의 역할이다. 이런 어른의 모습은 1960년대 중반으로 갈수록 보기 힘들어지는, 1950년대의 독특한 것이다.
◆마음의 현실
개봉 당시 이 영화에 대한 논객들의 반응은 호평 일색이었다. 게다가 그해 우수국산영화로 선정됐고 제3회 국제영화상에서 수여하는 ‘최우수한국영화작품상’도 받았다. 제6회 아시아영화제에 출품돼 막내 역을 맡은 배우 박광수가 ‘최우수소년연기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이 영화에 묘사된 현실이 당시의 현실을 그대로 옮겨 온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1950년대 서울은 6·25전쟁으로 인한 빈곤과 혼란이 문제가 되고 있던 곳이지만, 영화에는 그런 문제를 아예 삭제했다. 고 박사네 집만 해도 그렇다. 대문에서 현관에 이르기까지 펼쳐지는 넓은 정원, 거대한 현관, 벽난로에 긴 소파, 넓은 테라스, 2층으로 연결되는 나선형 계단…. 당시 서울의 현실적 삶과는 거리가 먼 것들이었다. 이 집은 오히려 미국 할리우드 영화 속 중산층의 전형적인 주택을 닮았다. 어디 공간뿐이겠는가. 할리우드 스타 못지않은 여배우의 옷차림은 집만큼이나 비현실적이다.
영화가 진짜 담고 있는 것은 실제 현실이 아니라 그 시대의 대중들이 가졌던 문화적 상상과 염원이다. 이 영화가 보여 주는 낙관성은 신생 독립국가로 출발한 젊은 나라가 가졌던 새 시대에 대한 기대일 수 있다. 그것은 너무 이상적이어서 때론 몽상에 불과해 보일 수 있으나, 그 몽상은 훗날 권위적인 정권에 대항하는 힘으로 결집될 수 있는 것이기도 했다. ‘자유결혼’이 구현한 세계는 영화가 민주주의를 훈련하는 장소이자, 전통과 현대가 조화롭게 공존할 방식을 고민하는 공론장으로 영화가 기능하고 있었음을 새삼 깨닫게 해준다.
오영숙 성공회대 동아시아연구소 HK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