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뒤덮은 매캐한 연기·중금속 폐수… 질식해버린 삶터 [밀착취재]

경북 봉화군 영풍 석포제련소 ‘환경오염의 민낯’
낙동강 최상류에 자리 잡은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뿜어대는 연기가 하늘을 가득 메웠다. 매캐한 연기가 코를 찔러 잠시도 서 있기 힘들었다. 환경단체와 주민들의 시선을 피해 인적이 드문 늦은 밤부터 이른 새벽까지 공장을 가동하고 연기를 내뿜고 있었다. 연기에는 아황산가스와 미세 중금속이 포함되어 있다. 겨울이면 이 연기가 구름을 만들어 ‘석포눈’이 되어 내린다. 주민들은 “‘석포눈’이 피부에 닿으면 따끔하다”고 이야기했다.

경북 봉화군 석포면 낙동강 협곡에 자리 잡은 영풍 석포제련소. 굴뚝 수십곳에서 뿜어낸 희뿌연 연기가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었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찔렀다.

나무가 말라 비틀어져 황폐화된 영풍 석포제련소 인근 산에 올랐다. 나무들은 새까맣게 불에 탄 듯 고사했다. 2014년 산림청에서는 재선충에 걸린 것처럼 보이기 위해 나무를 토막내고 한 곳에 모아뒀다. 이렇게 피해가 심각한데도 제대로 된 대기환경측정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1970년에 설립된 영풍 석포제련소는 연 매출 1조4000억원의 아연 생산량 국내 1위, 세계 4위 비철금속 제련업체다. 반면, 공장 주변 환경오염은 심각한 수준이다. 아연 제련 공정에서 나오는 아황산가스가 인근 산림을 덮쳤다. 공장을 둘러싼 산에는 풀 한 포기 나지 않고 나무들은 말라 비틀어졌다. 과거 자연경관이 빼어난 봉화군의 특산물로 알려진 자연산 송이버섯의 연간 생산량이 1만t이나 됐었지만 지금은 10t에도 미치지 못한다고 한다. 공장 바로 옆 낙동강 본류에는 다슬기 한 마리 찾아보기 힘들다. 오염물질이 쌓여 붉게 변한 토양과 하얗게 얼룩진 바위만 볼 수 있다. 카드뮴, 비소 등 중금속이 최상류인 이곳에서 흘러들어 1300만 영남권 주민의 식수원인 낙동강을 위협한다. 안동댐에선 중금속에 오염돼 물고기가 떼죽음하고 그 물고기를 먹은 왜가리 등 철새들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어 나간다.

 

환경단체는 영풍 석포제련소를 “낙동강 오염 주범”이라며 공장 폐쇄를 요구하고 있다.

 

낙동강 중상류인 안동댐 인근 농경지에서 중금속으로 점령된 검고 붉은 퇴적물 위로 물길이 흐르고 있다. 안동댐의 퇴적물은 중금속인 카드뮴이 검출돼 ‘매우 나쁨’ 등급으로 평가됐다.

2015년 실시한 석포제련소 주변 지역 환경영향조사에서 토양 시료를 검사한 결과 반경 4㎞ 안 448개 저점 중 344개 지점에서 우려 기준을 넘는 중금속이 검출돼 토양 정화 명령이 내려졌다. 석포제련소는 2018년에는 폐수 70여t을 낙동강에 배출해 20일 조업정지 처분을 받기도 했다. 최근 5년간 환경 관련 법령 위반 사항은 48건이나 된다. 제3공장을 허가 없이 증설하고 불법으로 가동하다 2013년 적발됐지만 강제 이행금만 납부하고 불법건축물 양성화를 거쳐 운영 중이다.

환경부는 지난 4월 제련소 공장 내 무허가 관정 52곳 개발·이용, 폐수 배출시설 및 처리시설 부적정 운영 등 6가지 관련 법률 위반 사항을 적발했다. 아울러 인근 하천에서 카드뮴 농도가 기준치보다 초과한 것을 확인했다.

영풍 석포 제련소에서 70㎞ 가량 떨어진 낙동강 중상류 안동시 와룡면 오천리 일대 왜가리 집단 서식지에서 폐사한 왜가리들이 바닥에 나뒹굴고 있다. 안동댐의 오염된 퇴적물과 카드뮴과 같은 중금속이 검출된 물고기에서 폐사한 원인을 짐작할 수 있다. 낙동강사랑환경보존회 이태규 회장은 “하루에만 10여 마리 왜가리가 죽어나간다”고 밝혔다. 대구지방환경청은 집단폐사 원인 규명을 위해 민·관 합동 현장 정밀조사에 착수했다.
영풍 석포제련소 인근 하천 주변에 수 년 동안 중금속으로 오염된 퇴적물이 쌓여 있다.

이에 경북도는 영풍 석포제련소에 120일 조업정지 행정처분을 통지했다. 제련소 측은 조업정지가 현실화하면 철강·자동차 등 관련 업계에 심각한 타격을 줄 수 있고, 설비 부식 문제로 연내 재가동이 불가하다고 반발하며 청문을 요청한 상태다.



지난해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의 환경부 국정감사에서는 “느슨한 관리·감독과 솜방망이 처벌에는 뒤를 봐주는 ‘환피아(환경부+마피아)’가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30대 기업에서 채용한 관료 출신 사외이사 비율이 43%인 데 비해 영풍그룹은 80%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영풍 측은 홍영표 의원이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을 맡은 시기에 지인을 통해 홍 의원에게 접촉을 시도한 사실도 드러났다.

안동시 도산면 서부리에 사는 김두만(94) 할머니는 “숨 쉬기도 힘들다. 죽어야 고지치…”라고 말했다. 온몸에 아프지 않는 곳이 없다. 중금속으로 오염된 안동댐을 식수로 오랜 기간 사용해 왔다. 특히 이 마을 주민들 중에는 암이나 중풍을 앓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나이가 들어 아프다는 식으로 여길 뿐 정확한 원인에 대한 조사는 없었다.

석포면 주민 건강영향 조사에 따르면 소변과 혈액에서 나온 카드뮴 농도가 우리나라 국민 평균보다 3.47배 높았다. 석포면 전체 인구 2200여 명 중 80%가 제련소와 관련된 일에 종사하고 있기 때문으로 보인다. 석포면에서 재배된 대파에서 카드뮴이 기준치를 초과해 가락시장에서 돌려보낸 적도 있다고 한다. 석포 주민들은 환경오염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있지만 지역 경제와 생계가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이를 드러내기 힘들었다.

영풍제련소 환경오염 및 주민건강피해 공동대책위는 영풍 석포제련소에 대한 통합환경조사를 시행하고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해 낙동강 1300만 국민의 안전한 식수가 확보될 때까지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봉화·안동=사진·글 남정탁 기자 jungtak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