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경기교육청이 20일 전주 상산고와 안산 동산고에 대해 자율형사립고 재지정 평가에서 낙제점을 주면서 거센 후폭풍이 일고 있다. 당장 올해부터 일반고로 전환될 위기에 놓인 두 학교 관계자들과 학부모 등은 소송도 불사할 태세다. 재지정 평가를 앞둔 나머지 자사고들은 문재인정부의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 드라이브가 가속화할 것이라는 위기감에 전전긍긍하고 있다. 올해 고교입시를 준비하는 학생과 학부모들은 사태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마지막 칼자루를 쥔 교육부의 결정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재지정 탈락 학교 속출하나… 칼자루 쥔 유은혜
자사고 재지정 평가는 5년마다 진행된다. 올해 재지정 평가를 받는 학교는 전체 자사고 42개교 중 24곳이다. 이날 낙제점을 받은 상산고를 포함한 민족사관고, 광양제철고, 포항제철고, 현대청운고, 하나고 등 8개 전국 단위 자사고와 16개 시·도 단위 자사고가 이에 해당한다. 80점인 전북을 제외한 나머지 지역에서는 모두 재지정 기준점이 70점이다. 민족사관고는 비교적 안정권이라는 관측이 우세하지만 나머지는 예측 불허다.
특히 내달 발표될 서울 13개 자사고를 포함해 나머지 학교들은 한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자사고 폐지론자라는 점에서 지정 취소가 잇따를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앞서 서울자사고교장연합회는 모의운영평가 결과 13개교 모두 재지정 기준점(70점)에 못 미치는 점수를 받았다고 반발했다.
자사고 지정·지정취소 권한은 법적으로 각 시·도 교육감에게 있지만 최종결정권자는 교육부다. 교육감이 자사고를 지정·지정 취소하기 전 교육부 장관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유은혜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이 키를 쥐고 있는 셈이다. 유 부총리는 최근 언론 인터뷰에서 “(운영평가에) 절차상 문제가 없다면 평가 결과를 존중할 것”이라면서 각 교육감이 자사고 지정취소를 결정하면 이에 동의하겠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다만, 교육부 속내는 복잡하다. 상산고의 커트라인 80점은 다른 지역과 견줘 형평성 시비가 있다. 지역 명문고 소멸 위기감을 등에 업은 지역 여론과 정치권의 반발도 부담이다. 그렇다고 각 시·도 교육감의 지정 취소 평가에 동의하지 않으면 거꾸로 교육자치권 논란과 지지층 이반 사태로 번질 수 있다.
교육부는 고교 입시의 혼란을 줄이기 위해 상산고의 경우 전북교육청이 7월 중순 동의요청을 해오면 7월 말까지는 결론을 낸다는 입장이다. 앞으로 다른 자사고의 지정 취소 신청이 더 나오더라도 고입시행계획이 확정되는 9월6일 이전에는 모두 결론을 내겠다는 방침이다. 교육부 김성근 학교정책실장은 이날 “학교현장의 혼란이 없도록 신속하게 동의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라며 “부당한 결론에 도달하지 않도록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자사고가 뭐길래?
자사고 시초는 고교평준화 문제점을 보완하기 위해 김영삼정부 때 제안되고 김대중정부 때인 2001년 도입된 자립형사립고다. 1974년 시작된 고교평준화로 교육이 획일화한다는 우려가 계속되자 역대 정부는 여러 고교 유형을 만들어 이에 대응했는데 자사고도 그중 하나다. 이후 자사고는 이명박정부 때 ‘고교다양화 300 프로젝트’로 49개교로 증가했다가 현재는 전국적으로 42개교가 운영 중이다. 2010년 1월 고교체제 개편에 따라 교육과학기술부가 자립형사립고의 자율형사립고 전환을 추진하였고, 민족사관고 등 자립형사립고가 이때 자율형사립고로 모두 바뀌었다. 자사고는 교육과정 편성·운영에 상대적으로 자율성을 갖는 대신 국가에서 교직원 인건비와 학교·교육과정 운영비 등 재정지원을 받지 못한다. 재정지원이 없다 보니 학부모부담금(학비)이 일반고 3~4배 수준이어서 일각에서는 자사고를 ‘소수계층을 위한 특권 학교’로 규정하기도 한다. 설립 취지와 달리 ‘입시 위주 교육’을 한다는 비판도 받는다.
교육계에서는 이번 지정취소 결정을 지난해 6·13선거에서 진보교육감이 대거 당선되면서 예정된 수순으로 보고 있다. 진보교육감들은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일제히 자사고·외고 폐지를 핵심 공약으로 내걸었다.
세종=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