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장님, 저 여기 출근하는 데 한 시간 반이 걸려요. 왕복 세 시간이 드는데 지금보다 월급이 깎이면 계속 다닐 이유가 없어요. 야간대학 학자금 빚진 것도 갚아야 하고… 병원 다니는 것도 제가 다니고 싶어서 다니는 게 아니고 아파서 그러는 건데 그걸 트집 잡으시면 안 되죠.”
외국계 중소기업에서 비정규직 근로자로 일하는 혜미는 고객들 대하는 태도도 경직돼 있고 상사들에게도 융통성을 발휘하지 못해 미운털이 박힌 상태였다. 새로 부임한 사장으로부터 그녀를 해고하라는 명을 받은 중간 간부인 ‘은영’은 나름대로 ‘합리적인’ 선택을 하지만 혜미는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장기 아르바이트생이었던 혜미에게 사비까지 지불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을 때 은영의 남편은 말한다.
“걔 불쌍하다고, 잘 봐주려고 했었잖아. 가난하고 머리가 나빠 보이니까 착하고 약한 피해자일 거라고 생각하고 얕잡아 봤던 거지. 그런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거든. 걔도 알바를 열몇 개나 했다며. 그 바닥에서 어떻게 싸우고 버텨야 하는지, 걔도 나름대로 경륜이 있고 요령이 있는 거지. 어떻게 보면 그런 바닥에서는 우리가 더 약자야. 자기나 나나, 월급 떼먹는 주유소 사장님이랑 멱살잡이해 본 적 없잖아?”
기획력이 뛰어난 기자 출신 소설가 장강명(44·사진)이 작금 한국 사회의 노동과 경제문제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단편들을 모은 소설집 ‘산 자들’(민음사)을 펴냈다. 첫머리에 수록한 이 단편 ‘알바생 자르기’에서 보듯 장강명은 한국 사회 문제들을 어느 한쪽 시각으로 재단하지 않고 양쪽의 생각과 처지를 실감나게 보여주는 미덕을 발휘한다. 판단은 독자의 몫이지만, 그의 소설들은 실제 현장에 접근해 당사자들을 인터뷰하는 성실한 취재 덕분에 몰입감과 설득력이 배가된다.
사거리 100미터 안쪽에서 빵집 세 곳이 경쟁을 벌이는 ‘현수동 빵집 삼국지’도 그러하다. 프렌차이즈 빵집 두 곳은 살아남지만 할아버지 부부가 도저히 지속할 수 없는 방식으로 가게를 운영하는 작은 규모의 베이커리는 결국 문을 닫는다. 남은 곳들도 제 살 깎는 무한경쟁 속에서 행복하지 않다. 빵집 딸 ‘주영’은 자신들이 “불필요한 기관은 모두 버리고 오직 생존만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동굴 속 물고기들 같다고 자조한다.
‘자르기’ ‘싸우기’ ‘버티기’ 등 3부로 구성된 이 소설집에는 이 밖에도 ‘대기발령’ ‘공장 밖에서’ ‘사람 사는 집’ ‘카메라 테스트’ ‘대외 활동의 신’ ‘모두, 친절하다’ ‘음악의 가격’ ‘새들은 나는 게 재미있을까’ 등 모두 10편이 수록됐다. 장강명은 “지금 여기서 우리가 매일 이야기하는 한낮의 노동과 경제 문제들을 기록하고 싶었다”면서 “공감 없는 이해는 자주 잔인해지고, 이해가 결여된 공감은 종종 공허해진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