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 물방울 작가 아기 타다시 남매의 인생을 바꾼 한병의 와인 [최현태 기자의 와인홀릭]

와인 토크쇼를 진행중인 신의 물방울 저자 아기 타다시 남매

“조용한 저녁 노을이 떠올라요. 조금 전 비가 온 뒤 개었지만 아직 어둠이 남아있네요. 그 어둠은 내일이면 갤 것 같아요. 어둠을 지니고 있으면서 밝음을 예고하는 차분한 와인이네요. 그라데이션의 느낌을 갖고 있어요”.(기바야시 유코).

 

“여자는 여자인데 남자 느낌이네요. 아 맞아요. 기골이 장대한 여장부 같은데요”.(기바야시 신)

 

만화책에서 본 것과도 똑 같았다. 전세계에서 1500만부 이상 팔린 베스트 셀러 와인만화 ‘신의 물방울’의 작가 아기 타다시 남매는 천상 타고난 이야기꾼들이다. 실제 와인을 마시면서도 만화책에서 주인공 칸자키 시즈쿠와 토미네 잇세가 와인을 멋드러지게 표현하는 장면처럼 그들의 느낌을  줄줄 풀어낸다.

 

필명 아기 타다시로 와인 만화 신의 물방울을 집대성한 작가 기바야시 유코와 기바야시 신 남매가 29일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인천 영종해안남로 파라다이스시티 호텔에서 팬들과 신의 물방울에 등장한 와인 5종을 시음하며 와인을 마신 뒤 떠오르는 느낌을 함께 표현하며 공유하는 뜻깊은 시간을 가졌다. 

 

가바야시 유코

“신의 물방물에 등장한 12사도는 실제 우리가 먹자마자 강렬한 이미지가 떠오르는 와인들이었어요. 이미지를 확실하게 갖고 있는 와인이 좋은 와인이라 생각해요. 도멘 드 라 로마네꽁띠 그랑 에셰죠(Domaine de la Romanee Conti, Grands Echezeaux)는 많은 영감을 줘서 와인에 빠지게 만든 첫번째 와인이에요. 우리 남매는 평소 집에서 와인 시음을 자주했는데 우연히 이 와인을 열었죠. 그런데 엄청난 임팩트가 있었어요. 에셰죠 1995년산이었는데 뚜껑을 열자 마자 온 향기가 방안을 맴돌정도로 강력했답니다. 와인은 여는 타이밍 너무 중요해요. 언제 여느냐에 따라 와인의 꽃봉우리가 피었느냐가 결정되죠. 비슷한 등급의 와인을 전에도 많이 먹어 봤지만 이런 경험은 없었답니다. 그때 인생에서 한번 만나는 기회가 온 것이 아니냐는 충격을 받았어요.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바뀔 수 있죠. 그것이 책일수고 한편의 영화일수도 있죠. 우리에게는 이 한병의 와인이 인생을 바꾸게 만들었답니다”.

 

가바야시 신

아기 타다시 남매는 신의 물방울이 완결된뒤 다음 작품 구상을 위해 최근 프랑스 와인의 심장인 보르도에 다녀왔다고 한다. 다음 작품의 역시 그들의 세계관이 확실하게 담긴 작품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신의 물방울’이라는 작품 제목과 12사도의 세계관은 어떻게 탄생했는지 가장 궁금했다. “처음에 작품을 시작할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책이 될 것이라고 절대 생각 못했어요. 그냥 와인을 좋아해서 취미로 그리기 시작한 거죠. 우리 남매는 늘 작품 활동을 같이했는데 매일밤 와인을 마시며 느낌을 교류했죠. 와인을 먹은 뒤 이 와인은 여자의 느낌이다, 남자의 느낌이다 그런 단순한 표현부터 시작했어요. 그러다 표현이 점점 발전하게되더라구요. 풍경이나, 특정 지역, 어린시절 광경 등으로 묘사를 하기 시작했죠. 그런던 어느날 남동생이 이를 작품으로 한번 만들어 볼까하고 제안했죠”.

 

처음에는 이처럼 재미로 시작한 표현이었다고 한다. 작품으로 만들기로 했지만 어떻게 할까 고민하다가 이미지화 하는 것만으로도 다른 사람들과 공유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생각했고 제목을 어떻게 할 것인지 고민하던차에 신의 물방울이라는 제목이 떠올랐단다.

 

신의 물방울

“최후의 만찬 작품을 보는데 테이블위에 와인이 놓여 있더군요. 와인은 신의 피라는 의미를 갖고 있죠. 그 순간 신의 물방울이란 제목으로 짓게된거죠. 그때 불과 15분만에 신이 강림한 것처럼 신의 물방울의 이런 저런 스토리가 쫘악 펼쳐지면서 대략적인 줄거리 탄생했답니다. 그리스도의 12제자에서 영감을 얻은거죠”. 

 

이 스토리를 편집자에게 작품으로 만들자고 제안했는데 처음에는 거절당했다. 단순한 취미를 만화로 만드는 것이 잘 팔리겠느냐는 우려때문이었다. 하지만 설득끝에 1년정도 연재하기로 했는데 전혀 예상하지 못한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게 됐단다. 신의 물방울 1권에 등장한 그룹 퀸의 보헤미안 랩소디가 연상된다고 표현한 샤토 몽페라가 등장한다. “샤토 몽페라가 소개되면서 일본의 인터넷 판매업체를 통해 샤토 몽페라가 갑자기 폭발적으로 판매되기 나중에는 재고가 없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답니다. 와인 생산자가 일본에서만 왜 이 와인이 이렇게 많이 팔리는 궁금해서 직접 일본을 찾아 온적도 있답니다. 하하”.

 

아기 다다시 남매는 지금도 연간 1000병에서 많을 때는 2000병 정도 와인을 마신다고 한다. “지금까지 몇병이나 마셨나구요? 흠, 기억하지 못할 정도죠. 하하. 이동중에 비행기에서도 많이 마셔요. 하루에 80병도 마셔봤어요. 혓바닥이 상할 정도로 많이 마셨죠. 이번에 한국에 와서도 3일동안 매일 10병이상 시음한 것 같네요. 물론 다 마셔버리는 것은 아니고 시음만 하고 뱉어요”.  

 

아기 타다시 남매는 신의 물방울이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끈 2006∼2007년에는 거의 매달 한국을 찾았다. 그만큼 한국 음식도 많이 접했기에 한국 와인과 가장 잘 어울리는 와인 한병을 추천했달라고 주문했다. 

 

“한국의 어떤 음식도 와인과 잘 어울려요. 하지만 김치가 가장 고민됐어요. 우리는 고민하다 이탈리아산 와인을 매칭해봤죠. 이탈리아 음식은 고추와 마늘을 사용하고 고추향이 나는 와인도 있어요.  이탈리아 칼라브리아 일대에서 생산되는 갈리오포(Gaglioppo)라는 품종을 사용한 그라벨로(Gravello)였어요. 신의 물방울 13권에서 김치와 잘 어울리는 와인으로 소개됐죠. 고추밭 바로 옆 포도밭이 있어서인지 와인 자체에서도 고추의 향이 났어요”.

 

일본은 와인에 종량세를 적용해 종가세인 한국보다 와인값이 매우 저렴하다. 한국도 세제개편 논의가 계속 되고 있지만 최근 와인을 종량세로 바꾸는 방안은 무산됐다. “우리는 예전부터 한국도 제도를 개혁하면 와인이 더 붐을 이룰 것으로 생각했어요. 기자들이 이와 관련된 기사를 더 자주 쓰면 정부가 움직이지 않을까요”. 

 

이들은 ‘욘사마’ 배용준과의 인연도 소개했다. 한때 신의 물방울을 드라마로 만들려는 논의가 있었는데 당시 배용준이 토미네 잇세를 맡게될 것으로 알려졌었다. “우리 집에 배용준씨를 초대해서 스시를 먹으면서 와인을 마셨어요. 도멘 드라 로마네 콩티의 라타슈(Domaine de la Romanee Conti La Tache) 1999산이었죠. 우리가 한국에 갔을때는 배용준씨가 와인을 샀는데 샤토 빨메(Chateau Palmer) 1961년산을 마셨죠”.

 

참석자들에게 와인의 느낌을 듣는 가바야시 신

이날 아기 타다시 남매는 신의 물방울 1권에 소개된 프랑스 레드와인 도멘 클로드 뒤가 부르고뉴 루쥬(Domaine Claude Dugat Bourgogne Rouge)와 26권에 소개된 샴페인의 대명사 돔페리뇽(Dom Perignon) 2006, 프랑스 부르고뉴 마을단위 피노누아 도멘 그로 프레레 에 쉐르 에셰죠(Domaine Gros Frere et Soeur Echezeaux)2015 , 도멘 데 람브레이 클로 데 람브레이 모레생드니(Domaine des Lambrays Clos des Lambrays Morey St. Denis) 2016와 프랑스 보르도 생줄리엥 지역의 그랑크뤼 3등급 샤토 라그랑쥐(Chateau Lagrange)2013을 시음하며 느낌을 표현했다. 남동생 기바야시 신은 도멘 끌로 뒤 가 부르고뉴 루즈 2015를 시음한 뒤 “흙, 땅, 계피향 등이 느껴지며  부르고뉴 와인치고는 꽤나 남성적인 느낌을 갖고 있네요. 2015년은 그레이트 빈티지에요. 낮은 등급이지만 먹기 아주 좋은 빈티지죠.  여자는 여자인데 남자 느낌, 기골이 장대한 여장부 느낌이네요”라고 표현했다.

 

와인 토크콘서트 시음 와인

가바야시 신은 부르고뉴 모레생드니에서 생산되는 도멘 데 람브레이 끌로데 람브레이는 여자를 사로잡을때 선물하라고 추천했다. “이 와인은 나중에 포도밭 등급이 그랑크뤼로 올라가요. 토미네 잇세가 연인 로랑한테 보내는 와인으로 등장하는데 이는 어떻게 보면 메시지에요. 원래 그랑크뤼급 품질의 와인인데 그 가치를 나중에 사람들이 알아봐준거죠. 당시도 이 와인을 보면서 충분히 출세를 할수 있는 자질을 지녔다고 용기를 불어넣어주는 거죠. 여성적이면서도 육감적이고 무게감도 있어요. 향이 넓게 퍼지네요. 흔들수록 와인은 맛이 변하죠. 잠든 와인은 농후하지 않은 느낌이 있어요. 사람도 피곤하고 잠들때 건들면 반응 없는 것과 마찬가지에요. 1년이 지나면 사람이 일어났을때 나는 깨었다라고 스스로 말할 정도로 와인 스스로가 열려요. 와인이 스스로 열려서 환영하는 느낌을 받게되죠” 

 

도멘 그로 프레레 에 쉐르 에셰죠 2016

가바야시 유코는 도멘 그로 프레레 에 쉐르 에셰죠 2016을 마신뒤 “어둠을 지니고 있으면서 밝음을 예고하는 차분한 와인이네요. 그라데이션의 느낌을 갖고 있어요”라고 표현했다. 한 참석자는 이 와인에 대해 “화장을 전혀 하지 않았는데도 화장을 한 것 같은 자연 미인같다”고 느낌을 말했고 다른 참석자는 “이 와인처럼 나이들면서 늙어가고 싶다”고 느낌을 표현해 가바야시 신으로부터 “스바라시(멋지다)”라는 평가를 이끌어 냈다. 

 

돔페리뇽 2006

돔 페리뇽은 큰 글라스에 마셔야 제대로 와인이 살아있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고 추천했다. “그림도 작은 프레임에서 보면 잘 안느껴지는 것과 마찬가지죠. 와인도 큰 잔에 마시면 더 잘 느껴진답니다.직접 돔 페리뇽을 방문해서 체험한 적 있는데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생산자가 언덕에서 와이너리 풍경을 내려다보고 있더군요. 뭘 보고 있는지 물어보니 18세기 최초 돔페리뇽 생산자가 이 마을을 늘 이렇게 내려다 봤을텐데 그때 마음을 파악해보기위해 내려다 보고 있다고 말하더군요. 엄청 특별한 느낌이 들었어요. 돔페리뇽 와인메이커는 곧 은퇴하는데 그는 일본에서 사케를 만들 작정입니다. 돔페리뇽 와인메이커 만드는 사케라니 궁금하지 않는세요? 얼마나 흥미로울까요. 나중에 일본에 와서 꼭 느껴보세요”.

 

최현태 기자 htchoi@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