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도시 기행 1 -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 / 유시민 / 생각의길 / 1만6500원
“도시의 건축물과 박물관, 미술관, 길과 공원, 도시의 모든 것은 ‘텍스트(text)’일 뿐이다. 모든 텍스트가 그러하듯 도시의 텍스트도 해석을 요구한다. 그 요구에 응답하려면 ‘콘텍스트(context)’를 파악해야 한다. 도시의 건축물과 공간은 그것을 만든 사람의 생각과 감정과 욕망, 그들이 처해 있었던 환경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다. 누가, 언제, 왜, 어떤 제약조건 아래서, 어떤 방법으로 만들었는지 살피지 않는 사람에게, 도시는 그저 자신을 보여줄 뿐 친절하게 말을 걸어주지는 않는다.”
보이는 만큼 알게 되지만, 아는 만큼 보인다. ‘지식소매상’을 자처하는 유시민 작가는 도시를 대형서점에 비유한다. 대형서점의 가장 큰 장점은 ‘뜻밖의 발견’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려고 마음먹었던 책이 신간안내나 서평에서 본 것처럼 정말 괜찮은지 확인하고, 신간코너와 베스트셀러 진열대, 귀퉁이 서가를 다니며 이 책, 저 책을 들춰보는 즐거움이 있다. 이를 위해서는 서점의 구조를 미리 파악하고, 어떤 분야의 책을 살펴볼지 계획을 세워야 한다.
유시민 작가가 낯선 유럽의 도시를 여행하는 방식이다. 찍어둔 곳은 빠뜨리지 않고, 몰랐던 공간을 발견하는 즐거움도 누린다. ‘유럽 도시 기행’에는 그가 5년 전부터 아내와 함께 해온 유럽 도시 탐사 이야기가 담겼다. 저자는 책에 대해 “관광안내서, 여행에세이, 도시와 역사와 건축물에 대한 보고서, 인문학 기행, 그 무엇도 아니면서 조금씩은 그 모두이기도 하다”며 “도시와 사람에 대한 이야기”라고 설명한다.
이번에 출간된 1권은 아테네, 로마, 이스탄불, 파리 4개 도시의 여행기를 들려준다. 유럽의 문화수도 역할을 하면서 인류 문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도시들이다. 책을 읽다보면 마치 저자가 출연했던 여행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을 보는듯하다. 다른 출연자를 신경 쓰지 않고 이야기를 더 깊고 길게 펼치는 그의 단독 무대인 셈이다.
저자는 도시의 역사는 물론 그 도시에 뚜렷한 흔적을 남긴 사람의 생애를 탐색한다. 각 도시의 어제와 오늘을 소개하고 파르테논, 콜로세오, 하기아 소피아, 에펠탑을 비롯한 주요 건축물과 명소, 거리를 밟으며 그곳에 얽힌 역사와 사건을 들려준다. 그 속에 담긴 이야기는 소설보다 더 극적이다.
여기에 자신만의 방식으로 보고 들으며 얻은 생각과 느낌을 덧붙인다. 유럽 역사를 되새기며 오늘의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플라카에서는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떠올리며 아테네 민주주의의 잠재력과 한계를 생각한다.
“오늘을 사는 우리는 소크라테스를 죽인 아테네 시민들보다 얼마나 더 훌륭하며 국가와 정치에 대해서 얼마나 더 큰 관심을 가지고 얼마나 더 능동적으로 참여하는가? 나는 직접민주주의가 다수의 폭정으로 흐를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비관론에 한표를 던지고 싶다.”
지금 시점에서 지구촌 문화수도를 정한다면 저자는 망설임 없이 에펠탑이 있는 파리를 선택하겠다고 했다. 그는 고대 왕궁이나 교회와 달리 강제 노동 없이 축조된 에펠탑은 자유와 평등, 인권의 시대에 맞는 방식으로 만들어졌다며 “자본주의는 격차와 불평등을 만들어내는 시스템이지만 적어도 공공연한 강제 노동이 없다는 점에서는 인류 역사상 가장 진보적인 질서임이 분명하다”고 말했다.
책에는 여행 일정과 경로, 각 지역 음식과 방문한 식당 이야기도 담겨있다. 저자가 한 도시를 여행한 기간은 4박5일 안팎이다. 일정을 짜서 항공편과 숙소만 미리 잡고 나머지는 현지에서 결정했다. 여행자들에게 필요한 정보를 전하면서도 일반적인 여행책과는 차별화한 인문학적 상상력을 보여준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