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랫동안 지속돼 온 인간관계이자 사회집단이다. 최근 그 형태와 의미가 일부 변하고 있지만 남성과 여성이 관계를 맺고 후손을 낳아 기르며 인류 공동체의 근간인 가족을 구성하는 시발점이 바로 부부이다. 생각해보면 우리 일생을 통해 부부의 경우가 아니면 우리가 어떤 한 사람과 오랜 시간을 함께하는 경우는 찾기 힘들다. 하지만 가까운 관계이기에 의견충돌과 이로 인한 갈등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현상이며, 오랫동안 ‘부부싸움은 칼로 물베기’라는 표현처럼 부부간 갈등은 불가피하지만 이를 믿음과 사랑으로 극복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이번 베트남 출신 결혼 이주여성이 당한 폭력으로 공론화된 결혼 이주여성 가정폭력은 부부간의 단순한 의견충돌과 갈등으로 보아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에 여전히 존재하는 다문화에 대한 편견이 가정 내 가부장적 우월의식과 결합돼 폭력의 형태로 나타난 것으로 볼 수 있다. 근대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자신의 배우자를 찾지 못하는 남성이 이주여성과 가정을 꾸리는 것이 이제는 낯선 사회현상은 아니다. 물론 결혼이 곧 부부의 영원한 행복을 의미하진 않으며 문화의 차이, 결혼을 둘러싼 사회적 조건의 차이 등으로 한국 남성과 이주 여성 간의 결혼에서 갈등이 불거질 상황이 발생하게 마련이다. 그렇지만 어떤 경우에도 평생을 같이 하기 위해 결혼한 부부 사이에 폭력을 행사한다는 것은 용납돼서는 안 되며, 두 사람 사이에 태어났을 수 있는 자녀의 미래를 생각하면 더욱 엄한 잣대로 판단돼야 한다.
더욱이 국가인권위원회가 지난해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남성과 결혼한 결혼 이주여성의 42.1%가 가정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다문화 가정 내 폭력이 반복해서 발생하는 것인가. 일단 결혼 이주여성과 결혼하는 남성 가운데에는 결혼을 행복의 시작으로 여기지 않고, 그동안 결혼하지 못했던 아쉬움과 외로움을 보상받으려는 사람이 존재한다. 더구나 상당수의 결혼 이주여성은 우리나라에 비해 경제력이 상대적으로 낮은 국가에서 오는 경우가 많으므로 성숙된 세계시민의식이 부족하다면 이들에 대해 편견을 가지기 쉽다. 제도적으로도 우리나라의 ‘가족폭력처벌법’은 가정 내 폭력을 다루는 데 한계가 적지 않다. 폭력의 정도가 상당히 심각하지 않으면 기소가 유예되기 마련이며 가정의 일은 가정에서 해결해야 한다고 믿는 사회적 관습 때문에 다문화가정에서 이주여성이 보호받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김중백 경희대 교수·사회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