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는 보았다. 잘려나간 형제들의 모습을… 나무는 들었다. 보금자리 잃은 새들 울음을… [밀착취재]

‘자연훼손 논란’ 제주 비자림로 4차로 확장공사 현장
벌목의 경계에 선 나무의 몸통에 시민들이 하얀 눈동자를 그려 넣었다. 나무는 봤다. 산란기를 맞은 새들의 둥지가 짓밟히는 순간을. 나무는 들었다. 함께 자란 형제들이 잘려나가는 소리를. 나무는 느꼈다. 숲 언저리에 걸터앉아 담뱃불을 붙이던 공사관계자들의 태연함을.

‘끼륵 끼륵’ 비자림로 숲 가장자리에서 새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중장비 굉음을 뚫고 들려오는 울음은 날카로웠다. 천천히 소리를 따라갔다. 나무가 잘리면서 바닥으로 굴러떨어진 큰오색딱따구리 새끼였다. 어미는 보이지 않았다. ‘숲에 사는 다른 생명은 괜찮은 걸까.’ 시민들은 폐허 속에서 생명을 찾기 시작했다.

비자림로는 제주시 구좌읍 송당리 칡오름과 거슨세미오름 사이 골짜기를 통과하는 왕복 2차로 지방도다. 지난해 8월 제주도가 대천교차로부터 금백조로 입구까지 비자림로 2.9㎞ 구간을 4차로로 확장하는 공사에 나섰다가 자연훼손 논란에 휩싸이며 잠정 중단한 바 있다. 제주도는 이곳의 벌채 면적을 줄이는 등의 대책을 담은 ‘아름다운 경관도로’ 조성안을 발표하고 공사 재개를 예고했다.

베인 삼나무가 하얀 단면을 드러낸 채 누워있다. 조사자와 시민들이 숲에서 생명을 찾아다니는 동안 제주도는 임목 폐기물 처리 용역 공고를 냈다. 잘리고 뿌리 뽑힌 나무 위로 ‘임목 폐기물’이라는 표지가 붙었다. 그렇게 뭇 생명의 터전은 쓰레기가 됐다.

지난 3월23일 제주도는 비자림로 숲에서 벌목을 재개했다. 숲으로 들어간 주황색 굴착기는 뽑고, 자르고, 다지는 단순 작업을 반복했다. 5월 말까지 소나무, 삼나무, 붓순나무, 팽나무, 황칠나무 등 수십종의 나무 약 2700그루가 생명을 잃었다. 뿌리 깊은 나무는 전기톱에 잘렸고, 어린 나무는 뿌리째 뽑혔다. 짙은 초록색 경관을 자랑하던 비자림로 삼나무의 나이테는 50 언저리에서 멈췄다.

지난 5월 9일 비자림로 확·포장 공사 현장. 울창했던 숲은 사라지고, 파헤쳐진 흙과 중장비 굉음만 남았다.
지난 5월 9일 상공에서 내려다본 비자림로 공사현장. 영겁의 세월을 거쳐 만들어진 숲의 푸르름은 반나절 만에 완전히 벗겨졌다.

녹음이 우거지기 시작하는 5월, 비자림로 숲에서는 전기톱 소리가 더욱 크게 진동했다. 이 시기 새들은 오름과 오름 사이를 오가며 짝을 찾고, 숲에 날아들어 둥지를 틀고 새끼를 낳아 기른다. 이들이 수천년을 이어온 생태 법칙이다. 그 섭리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때 새들은 숲을 떠난다. 이것은 작은 멸종을 의미한다. 동식물의 번식기에 숲을 훼손하는 일은 인간이 자연에 행할 수 있는 최대치의 교란이다.

지난 6월 18일 오후 비자림로 인근 숲에서 관찰된 팔색조(멸종위기 야생생물 ⅡI급·천연기념물 204호). 정밀생태조사를 통해 비자림로 공사구간 안에서 팔색조 둥지와 서식 세력권 13곳이 발견됐다. 새와 생명의 터 제공
5일 오후 비자림로 인근 숲에서 관찰된 팔색조(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천연기념물 204호) 둥지. 삼나무 잎과 가지를 엮어 만든 둥지 안으로 알 세 개가 보인다.

‘휘이 휘이’ 시민들로 구성된 ‘비자림로 모니터링단’은 지난 5월25일 새벽 공사 현장에서 법정보호종인 팔색조의 울음소리를 녹음하는 데 성공했다. 제주도가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에서 없다고 기록했던 생물을 시민들이 나서서 찾아낸 것이다. 모니터링에 참여해 직접 팔색조를 만난 시민 김키미(39)씨는 “숲이 뭇 생명을 품고 있었다”면서 “수많은 동식물의 삶이 맞닿아 있고 사람도 예외일 수 없다”고 말했다.



멸종위기종의 존재를 확인한 영산강유역 환경청은 지난 5월29일 제주도에 ‘공사 중지 후 전문가들을 통해 법정보호종 등을 정밀 조사하고, 보존 대책을 마련할 것’을 요청했다. 제주도는 이를 받아들였다.

4일 오후 비자림로 인근 숲에서 관찰된 수컷 긴꼬리딱새(멸종위기 야생생물 Ⅱ급). 정밀생태조사를 통해 비자림로 공사 구간에서 복수의 긴꼬리딱새 둥지와 서식 세력권 23곳이 발견됐다.
4일 오후 비자림로 인근 숲에서 관찰된 수컷 두점박이사슴벌레(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 생명다양성재단 배윤혁 연구원은 “두점박이사슴벌레는 빛에 예민하게 반응한다”면서 “도로가 확장되면서 빛을 가려주던 삼나무가 베어지고 가로등이 생겨난다면 로드킬 당하는 개체가 급격히 늘어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난 6월 13일 비자림로 공사구간에서 관찰된 수컷 애기뿔소똥구리(멸종위기 야생생물 II급). 기존 소규모 환경영향평가에서는 누락됐으나, 생태정밀조사에서는 4시간도 안 되는 시간 동안 72개체가 관찰됐다.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제공
지난 5월 11일 비자림로 공사 현장에서 발견된 큰오색딱따구리 새끼. 야생동물구조센터의 보호를 받다가 지난 6월 13일 비자림로에 방사됐다.

생태정밀조사와 생명다양성재단의 추가조사 결과, 비자림로 공사 구간에서 팔색조 이외에도 긴꼬리딱새, 맹꽁이 등 총 7종의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종이 확인됐다. 특히, 비자림로에 서식하는 것으로 밝혀진 붉은해오라기는 지구상에 600~1700개체 정도밖에 남지 않은 종이다. 이는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이 ‘멸종취약’ 동물로 분류한 ‘판다’보다도 적은 수다.

이창민 제주도 건설과장은 “제대로 현장을 반영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환경영향평가의 부실함을 인정한다”면서도 “조사 시기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단순비교는 어렵다”고 반론했다. 그러나 환경영향평가 정보지원시스템을 통해 확인한 결과 제주도가 2014년 6월18일부터 이틀간 실시한 동식물상 조사기간은 이번 생태정밀조사 기간과 시기적으로 정확히 일치했다.

“제주도엔 옳은 결정을 내릴 기회가 아직 남아 있다.” 생태정밀조사에 참여한 영국인 조류학자 나이얼 무어스(Nial Moores) 박사의 말이다. 한국에서 20년째 새를 연구 중인 무어스 박사는 “희귀한 새들이 높은 밀도로 존재하는 비자림로는 세계적으로 매우 보기 드문 자연환경”이라고 설명했다.

 

 

한편,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지난 3월 공사 재개 이후 본인의 유튜브 채널을 통해 삼나무를 아토피와 꽃가루 알레르기의 원인으로 지목하면서, 예산을 들여서라도 없애야 할 ‘공공의 적’이라고 언급했다. 아울러 4차로로 확장되는 비자림로는 ‘아름다운 생태도로’라고 하면서 환경파괴적인 난개발이 아니라는 점을 부각했다.

최재천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는 “비자림로는 생물다양성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한 곳으로, 길을 내고 안 내고를 논의할 수준이 아니다”며 “어떻게 보전하고 연구해야 할지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삼나무가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종일 뿐, 그 숲 안쪽에는 보이지 않는 생물들이 수없이 많은 연결을 이루며 살아간다”고 설명했다. 최 교수는 “자연으로 향하는 도로는 반드시 느리고 소박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제주=글·사진 하상윤 기자 jonyy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