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리는 ‘무기 빅딜’…韓 훈련기 수출 백지화 우려도 [박수찬의 軍]

태국에 수출되는 T-50TH 훈련기 편대가 현지로 이동하기 위해 활주로를 이륙하고 있다. KAI 제공

지난해 하반기부터 국내 방위산업계의 관심이 집중됐던 국산 훈련기-스페인 수송기 맞교환(스왑딜) 프로젝트가 표류하고 있다. 국산 KT-1과 T-50 훈련기 50여대를 스페인 공군이 운용할 A400M 수송기 4~6대를 맞교환하는 1조원 규모의 대형 방위산업 프로젝트 추진에 제동이 걸리는 모양새다. 이를 두고 방산업계 안팎에서 다양한 추측이 제기되면서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20일 “지난달 말 서울에서 스페인 방위사업청(DGMA)와 한국 방위사업청(DAPA)간 회의가 열렸다”며 “당초 국산 훈련기-스페인 수송기 맞교환 관련 의향서(LOI)가 도출될거라는 관측이 많았으나 별다른 성과가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방산업계 관계자도 “그야말로 ‘멘붕’”이라며 “‘문제가 발생한 것 아니냐’는 말이 많지만, 추이를 지켜보는 것 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스페인측은 귀국한 뒤에도 이와 관련해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며 “프로젝트 추진 동력이 저하되는 것 아닌지 우려스럽다”고 설명했다.

 

한국 공군 KT-1 훈련기 편대가 훈련을 위해 비행을 하고 있다. KAI 제공

◆‘빅딜’이 ‘스몰딜’로 바뀔 가능성 높아

 

국산 훈련기-스페인 수송기 맞교환이 처음 거론됐던 시기는 지난해 하반기다. 당시에는 한국과 스페인이 가급적 이른 시기에 합의를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KT-1과 T-50 제작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은 미 공군 훈련기 사업(APT) 수주 실패를 만회할 돌파구가 필요했다. 스페인측은 재정 문제로 도입이 어려운 A400M 수송기 중 일부를 한국에 판매하면 부담을 덜 수 있었다.

 

의향서(LOI)는 국제거래에 대한 협상단계(정식계약체결 이전단계)에서 당사자의 의도나 목적, 합의사항 등을 확인하기 위해 만드는 문서다. 법적 구속력은 없지만 최종협상을 앞두고 당사자의 의견이 표시되는 만큼 LOI 체결은 협상 과정에서 상당한 의미를 지닌다. 국산 훈련기-스페인 수송기 맞교환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LOI가 나오지 못했다는 점은 양측의 의견차가 적지 않았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이같은 상황은 스페인측의 태도 변화에 원인이 있다는 지적이다. 방산업계 소식통은 “스페인 방위사업청은 기본훈련기 도입 사업을 공개경쟁입찰 방식으로 추진하기로 결정했다”며 “맞교환 대상은 T-50으로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에어버스가 제작한 A400M 수송기가 해안 착륙 능력을 검증하기 위해 바닷가에 착륙을 시도하고 있다. 에어버스 제공

당초 스페인측은 T-50과 A400M의 맞교환을 염두에 뒀다. 기존에 운용중인 고등훈련기의 노후화에 따른 대체 기종을 확보하면서 A400M 재고 물량을 소화하기 위한 차원이었다. 하지만 프로젝트 추진 과정에서 ‘규모의 경제’를 달성하기 위해 KT-1이 추가됐다.

 

이에 따라 프로젝트 규모도 최대 1조원 수준까지 불어났으나 우려도 적지 않았다. 미국, 러시아, 중국, 한국처럼 기본훈련기와 고등훈련기를 자체 개발한 국가가 아니라면, 훈련기를 특정 국가에서 모두 구매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국산 훈련기를 도입한 나라 중 KT-1과 T-50을 함께 운용하는 국가는 인도네시아가 유일하다. T-50에 관심을 보였던 스페인이 KT-1까지 도입할 가능성은 낮았던 셈이다.

 

가격 문제도 발목을 잡고 있다. 경쟁기종인 스위스제 PC-9이나 미국제 T-6A 등은 많은 수량이 생산된 기종이다. 지속적인 성능개량을 통해 첨단 장비를 탑재했다. 대당 가격도 90억원 안팎을 유지하고 있다. 반면 KT-1은 1990년대 개발이 이뤄진 이후 대폭적인 개량이나 새로운 버전의 항공기 출시가 이뤄지지 않았다. 단종된 부품이 많아지면서 부품 비용이 상승, 대당 가격도 110억원을 넘어선 것으로 알려졌다.

 

스페인의 의도대로 T-50과 A400M의 맞교환 형태도 프로젝트가 진행되면, ‘빅딜’은 ‘스몰딜’로 바뀐다.

 

문제는 맞교환 규모를 맞추는 과정에서 A400M 도입 수량이 3대에 머물 수 있다는 점이다. 원활한 운영을 위해서는 도입 규모가 짝수 수준이어야 한다. 하지만 2대를 도입하면 실질적인 전력증강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고, 4대를 들여오기에는 맞교환 규모가 맞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1조원 수준의 맞교환 규모를 염두에 두고 A400M 3대를 먼저 도입한 뒤 3대를 추가 도입하는 방안을 염두에 뒀던 것으로 알려진 군 당국으로서는 난처해질 수밖에 없다.

 

◆KAI 행보도 논란, “뭘 하고 있나”

 

방산업계와 군 안팎에서는 훈련기 제조업체인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의 행보도 논란을 빚고 있다. 스페인과의 무기 맞교환이 정부 대 정부(G2G) 협상 방식으로 진행중이지만, 제작사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는다.

 

이는 스페인측이 KAI에 대한 불신을 숨기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다. 정부 소식통은 “스페인측은 T-50만으로 무기 맞교환을 추진하고 싶어하나 KAI를 신뢰하기 어려워하고 있다”고 전했다.

 

CN-235와 C-212, C-295 수송기를 개발하고 타이푼 전투기 개발 및 생산에 참여한 스페인의 항공우주산업은 우리나라보다 다소 앞서 있다. 항공기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만큼 기존 구매국들이 간과했던 요소들에 문제를 제기할 가능성은 충분하다.

 

이를 해결하려면 KAI측의 행보가 중요하다. 협상을 진행중인 국방부나 방위사업청을 의식, 소극적인 태도를 유지하던 것에서 벗어나 제작사로서 스페인측의 불신을 해소하는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 공군 T-50 훈련기가 활주로에 주기되어 있다. KAI 제공

우리나라에 무기를 판매한 외국 업체들은 이같은 활동에 적극적이었다. 차기전투기(F-X) 사업 당시 F-35A는 미국 정부가 주도하는 대외군사판매(FMS) 방식 때문에 미국 정부가 협상에 나섰지만, F-35A에 대한 불신을 잠재우는 역할은 제작사인 록히드마틴이 주도했다. 해상초계기 2차 사업에서도 협상은 미국 정부가 진행했으나, 여론 조성 등은 제작사인 보잉이 진행했다. 이는 해당 사업 수주에 상당한 도움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김조원 현 KAI 사장이 취임한 2017년 10월 이후 KAI의 행보를 보면 스페인측의 불신을 해소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KAI측은 “현 사장이 적극적인 활동을 펼치고 있다”는 입장이나, 김 사장 임기 동안 실현된 훈련기 관련 수주는 지난해 11월 인도네시아에 KT-1 3대를 팔고, 인도네시아 공군 T-50I 훈련기를 개량하는 1000억원 규모 사업 정도다.

 

스페인과의 무기 맞교환도 마찬가지다. KAI에 새로운 전기를 맞이할 기회지만 KAI는 방위사업청에 모든 것을 맡긴 듯 한 모습이다. 방위사업청이 방산수출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나, 제작사 고유의 임무도 있는 법이다. 무기 맞교환이라는 수출 방식은 국민의 지지와 공감대 구축이 이뤄질 때 힘을 더 얻을 수 있지만, 그런 모습도 눈에 띠지 않는다. 방산업계 관계자는 “KAI가 미 공군 훈련기 사업 수주 실패를 딛고 새로운 활력을 얻으려면 지금보다 더 적극적으로 움직여야 한다”고 말했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