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지난달 이명인 유니스트(UNIST·울산과학기술원) 교수(도시환경공학)는 기말시험 맨 마지막에 추가점수가 있는 ‘보너스 문제’를 실었다. 추가점수를 받을 수 있는 조건은 이렇다.
‘3점과 10점 가운데 받고 싶은 점수를 고를 것. 단 10점을 고른 학생이 10%를 넘으면 모두 추가점수를 받을 수 없음.’
이 강의실의 학생도 24명. 이번에는 14명(58%)이 10점을, 9명이 3점을 골랐고, 1명은 0점을 택했다. 0점을 고른 한 명으로 인해 10점자의 수는 최종적으로 13명(54%)이 된다. 첫번째 실험과 같은 조건에서 ‘0점’이라는 선택지가 추가된 것만으로 10점자가 18명(75%)에서 13명(54%)으로 약 20%포인트 줄어든 것이다.
국제사회가 필사적으로 제한하고자 하는 온도 상승폭은 고작 2도다. 하루에도 10도 넘는 일교차를 경험하는 우리에게 ‘200년에 걸친 2도 상승’은 사소하게 느껴진다.
과학자들의 한결같은 경고를 자꾸 흘려듣게 되는 건 기후변화라는 현상이 ‘추상적인 위험’에 가깝고, 그렇기에 미래세대를 위해 오늘 나의 풍요로움을 포기하는 게 고통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경제학과 심리학에서는 기후변화와 같은 사회문제의 원인과 해결은 인간의 이기적인 속성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말한다. <세계일보>와 함께 이명인 교수가 진행한 간단한 실험도 환경문제를 야기하는 심리와 해결의 단초를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실제 이 보너스 문제가 시험성적에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
경제학에서 ‘죄수의 딜레마’ 혹은 ‘공유지의 비극’이라고 부르는 것과 유사한 이 강의실 실험은 딜런 셀터먼 미 메릴랜드대 교수(심리학)가 2008년부터 8년 동안 학생들에게 진행한 것이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알려졌고, 셀터먼 교수 본인이 지난해 6월 내셔널지오그래픽에 이를 소개하면서 더 유명해졌다.
그의 실험 결과도 이 교수와 비슷하다. 8년간 그가 맡은 수많은 강의에서 2점, 6점을 고르도록 했을 때 6점 선택자가 10%를 넘기지 않은 경우는 단 한 번에 그쳤다.
셀터먼 교수는 “모두 2점을 골랐다면 다 같이 보너스 점수를 받았겠지만 학생들은 ‘내 이익’을 극대화하는 선택을 했고, 이는 모두에게 가장 나쁜 결과로 이어졌다”며 “이처럼 더 많은 생산과 소비를 추구하는 사회에서는 과도한 탄소배출, 쓰레기 증가처럼 모두를 괴롭히는 환경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대부분 6점을 고르는 상황’은 0점이란 선택지가 등장하면 달라지기 시작한다. 이 교수의 실험과 마찬가지로 셀터먼 교수도 0점을 옵션으로 넣자 최고점 선택자가 줄어 추가점수를 받게 될 확률이 50%로 늘어난 것이다. 0점이라는 옵션이 바로 이기적인 선택을 절제하도록 하는 수단인 셈이다.
0점을 고르는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내가 희생해서 모두에게 좋은 결과를 가져다주고 싶다’거나 ‘최고점 선택자를 벌하고 싶어서’이다.
홍종호 서울대 교수(환경대학원)는 “기후변화 문제를 경제학자 관점에서 오래 연구해 온 사람으로서, 각 개인은 모두 자신에게 유리한 선택을 하려 하기 때문에 기후변화 대응은 매우 어려운 과제라고 생각한다”며 “정부나 국제기구 차원의 규제 혹은 선한 의지를 가진 개인, 단체, 정치인이 0점 선택지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다.
나와 기업만의 이익을 생각하는 ‘최고점 선택자’를 줄이기 위한 직접적인 수단으로는 탄소배출권 거래제와 탄소세가 있다. 이득을 얻은 대가로 발생한 사회적 비용, 즉 탄소 배출에 대해 직접 비용을 부담하게 하는 것이다.
국가가 기업에 탄소배출량을 할당하고, 부족하거나 남는 양은 탄소배출권 거래소에서 사고팔 수 있게 하는 배출권거래제는 유럽연합(EU)과 뉴질랜드, 우리나라, 중국(일부 도시), 일본(도쿄) 등지에서 시행 중이다.
지난해 노벨경제학상을 받은 윌리엄 노드하우스 미 예일대 석좌교수(경제학)는 그의 책 ‘기후 카지노’에서 “탄소세처럼 탄소에 가격을 매겨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것은 배출 감축에 강력한 인센티브를 제공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실제 그가 탄소가격을 1t에 25달러로 가정하고 에너지가격을 계산했더니 석탄은 134%, 천연가스는 5.8% 늘었다. 그 결과 가정에서는 연간 전기요금을 233달러, 운전은 117달러를 더 내는 등 737달러를 더 지불해야 할 것으로 추정됐다. 이렇게 걷힌 세수를 기후변화 대응이나 사회적 약자에게 배분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지난해 프랑스에서 탄소세 인상에 반발해 ‘노란조끼 시위’가 벌어진 것처럼 정치적 부담이 따르는 선택지다.
기업이 자발적으로 ‘최고점 선택자를 견제하는 0점 선택자’가 될 수도 있다. RE100 선언이 대표적이다. 구글, 애플 등 189개 기업이 선언한 RE100은 ‘100% 재생에너지만 사용해 생산활동을 하겠다’는 약속이다. 이들은 파트너 기업에도 재생에너지로만 만든 제품을 만들도록 요구하고 있어 그간 값싼 화석연료에 의존해 온 다른 기업이라면 사실상 불이익을 겪을 수 있다.
김지석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스페셜리스트는 “삼성전자도 100% 재생에너지로 제품을 만들지 않으면 애플 같은 곳에 납품할 수 없는 시대”며 “저탄소 전환을 비용부담으로만 생각하다가는 글로벌 시장에서 점점 경쟁력을 잃을 것”이라고 했다.
국민 개개인의 환경감수성을 높이는 것도 중요하다.
유럽연합집행위원회(EC)의 2014년 조사를 보면, 영국과 포르투갈에서 90% 이상의 국민들이 환경문제는 매우 중요한 이슈라고 답했지만 폐기물 발생, 친환경 제품 구매, 자동차 사용 등 구체적인 사안에서는 이해·공감도가 수십%포인트의 차이를 보였다.
그 원인을 연구한 아르민다 도 파소 포르투갈 UBI대학 교수(경영·경제학)는 이메일 인터뷰에서 “나의 행동이 타인과 사회에 어떤 영향을 줄지 고려하는 ‘친사회적 태도’가 실제 지속가능한 생활의 실천에 큰 영향을 준다”며 “그러나 사람은 어쩔 수 없이 본인의 이득을 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친사회적 태도가 개인의 희생으로 인식되지 않도록 하는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서용 아주대 교수(행정학)도 “기후변화가 심각하다는 피상적인 인식만으로 개인의 행동에 변화를 가져오기는 어렵다”며 “구체적인 위험과 편익을 이해시키고, 정책 어젠다 측면에서도 우선순위를 높일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
◆숫자로 보는 기후변화
지구의 평균기온은 산업화 이전 대비 1도 오른 상태다. 1도라는 값에 별로 위기감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다음 숫자들을 보면 어떨까.
1.5
우리나라의 평균 대기온도는 지난 100년간 1.5도 상승했다. 우리나라의 온난화 속도는 세계 평균보다 두 배 빠른 것으로 알려져 있다.
4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패널(IPCC)은 국제사회가 지금처럼 온실가스를 배출할 경우 2100년 지구 평균기온이 4도 오를 것이라고 전망한다. 인류가 지금과 같은 문명사회를 유지하기 힘든 수준이다.
60
지난 40년간 전 세계 척추동물(포유류, 조류, 양서·파충류, 어류)의 수가 60% 줄었다. 가장 많이 줄어든 곳은 중남미로, 이곳에서는 무려 89%가 감소했다.
18
지난 5월 영국은 18일 연속 석탄을 쓰지 않고 전력을 생산하는 기록을 세웠다. 1882년 석탄화력발전소 가동 후 처음으로 ‘석탄 없는 1주일’을 보낸 지 한 달도 안 돼 기록을 새로 썼다.
25
인도네시아 수도 자카르타는 기후변화와 과도한 지하수 사용으로 매년 25㎝씩 가라앉고 있다. 지구촌 연평균 해수면 상승 속도(연간 3㎜)보다 훨씬 심각한 피해에 최근 조코 위도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수도 이전 계획을 승인했다.
0729
글로벌 탄소발자국 네트워크(GFN)는 매년 ‘생태용량 초과의 날’을 발표한다. 1월1일부터 계산했을 때 지구가 1년 동안 생산해내는 모든 생태자원을 인간이 언제 다 써버리느냐를 나타낸다. 올해 생태용량 초과의 날은 닷새 뒤인 29일이다. 1971년에는 12월20일, 1991년에는 10월10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