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뉴욕시 맨해튼에 있는 센트럴파크 남쪽에는 흥미로운 빌딩들이 들어서고 있다. 멀리서 보면 마치 연필처럼 가늘고 긴 빌딩들이다. 너무 높아서 하늘을 긁는다는 뜻의 마천루(skyscraper)로 유명한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이지만, 요즘 들어서는 빌딩들처럼 좁고 높은 빌딩들은 과거에는 본 적이 없다. 어느 건축 평론가는 이 현상을 두고 로마제국이 시멘트를 사용해 돔을 만든 것이나, 19세기 말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마천루처럼 한 시대의 건축을 상징할 만한 사건이라고까지 말했을 정도다.
왜 뉴욕에서는 21세기에 이런 새로운 형태의 건물을 짓고 있을까? 이걸 이해하기 위해서는 현대 건축사의 흥미로운 한 부분을 들여다봐야 한다. 바로 근현대 미국을 대표하는 두 도시, 뉴욕과 시카고의 마천루 건축사 이야기다.
◆두 도시의 경쟁
◆어둡고 숨막히는 도시
그런데 두 도시가 마천루 경쟁을 벌이는 과정에서 도시에 사는 주민들이 불만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좁은 도시에 하늘을 찌를 듯한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면서 대낮에도 길거리는 어둡고 숨이 막혀서 살기 힘들다는 것이었다. 그런 불만은 당연히 마천루가 더 높고 많은 뉴욕시에서 심했고, 그 결과 1916년 뉴욕에서는 빌딩이 들어서는 대지를 가득 채우는 직육면체 형태의 마천루 건축을 금지하는 법이 생겨났다.
‘1916년 용도구획법’이라고 불리는 이 조치는 뉴욕의 스카이라인을 크게 바꿨다. 건물을 높게 짓고 싶다면 소위 셋백(setback)이라는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건물이 위로 올라가면서 계단 형태로 점점 좁아지도록 한 것으로, 이 법의 핵심은 도시 거주민들이 하늘을 볼 수 있고, 햇볕을 쬘 수 있게 하는 데 있었다.
1932년의 맨해튼 사진을 보면 1916년에 제정된 법이 스카이라인을 어떻게 바꿨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반면 같은 시기에 시카고는 그런 법을 제정하지 않았고 높이만을 제한했기 때문에 지금 기준으로는 다소 작고 뚱뚱해 보이는 빌딩들로 스카이라인이 만들어졌다.
그렇다면 21세기에 들어서서 갑자기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을 바꾸고 있는 연필 모양의 마천루들은 왜 등장한 걸까? 이 역시 뉴욕의 건축법과 무관하지 않다. 뉴욕시는 1961년, 수십년 된 용도구획법을 개정하면서 FAR(floor-area-ratio), 우리식으로 말하면 ‘용적률’에 해당하는 룰을 만들었다. 대지 면적을 기준으로 건축물의 부피에 제한을 둔 것이다. 즉, 건물을 가늘고 높게 짓든, 낮고 넓게 짓든 총 부피만 맞추면 되었다.
◆뉴욕식 자본주의 정신
그런데 여기에서 뉴욕식 자본주의 정신이 발휘된다. 용적률에 제한을 받아서 일정 높이 이상을 지을 수 없게 된 건축주라도 주변에 건물을 더 높게 지을 수 있음에도 용적률을 모두 사용하지 않아서 공중권(air rights)이 남아도는 건물이 있다면 그 건물주에게서 공중권을 사들일 수 있게 한 것이다.
원래는 역사적인 가치가 있는 낮은 건물을 부수고 더 높은 빌딩을 지으려는 건물주를 만류하는 대신 재산권을 보전해 주기 위해 만들어진 제도였지만, 일단 통과된 후에는 돈을 가진 사람들이 맨해튼에서 상대적으로 낮은 건물의 주인들을 찾아다니며 공중권을 사들이기 시작했다. 그런 대표적인 건물이 유명한 맨해튼의 트럼프 타워로, 원래는 용적률 때문에 20층 이상 올릴 수 없던 것을 인근에 있는 오래된 티파니 빌딩의 공중권을 사들여서 58층의 타워가 된 것이다.
그러다가 21세기에 들어오면서 전 세계적으로 빈부격차가 극심해지면서 갑부들이 안전한 투자처를 찾아 부동산 가격을 높이기 시작했다. 특히 뉴욕을 비롯한 미국의 대도시는 러시아와 중국의 자본이 들어왔지만 투자할 빌딩이 부족했다. 그런 잉여자본이 찾은 것이 센트럴파크 남쪽에 남은 작은 땅들이었고, 지난 수십년 동안 발전한 건축기술과 뉴욕 건축법의 도움으로 그렇게 작은 땅에도 초고층 빌딩을 지을 수 있게 된 것이다.
결국 오늘날 바뀌고 있는 맨해튼의 스카이라인은 자본과 건축법, 그리고 건축기술이 만들어낸 합작품이라는 점에서 19세기와 달라진 건 없다. 그저 모양만 달라졌을 뿐이다.
박상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