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으로 돌아온 장정일, 파격적 시어 여전

28년만에 낸 ‘눈 속의 구조대’

시집 ‘햄버거에 대한 명상’으로 1987년 당시 최연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면서 화제의 시인으로 부각됐던 장정일(57·사진)은 오랫동안 시와는 거리가 먼 행보를 보여왔다. 시보다 소설과 산문에 주력해 장편 ‘내게 거짓말을 해봐’(1997년)로는 외설 시비에 휘말린 필화사건의 주인공 노릇도 했다. 그가 마지막 시집 ‘천국에 못 가는 이유’ 이후 28년 만에 새 시집 ‘눈 속의 구조대’(민음사)를 펴내며 시인으로 귀환했다.

“소주를 마시고/ 깊은 우물을 내려다보니/ 목이 잘린 부모님과/ 철사로 찬찬이 묶인 아이들이/ 소근소근 지난 이야기를 하고 있네// 우리 집에 누가 불냈어?/ 우리 집에 누가 불냈어?/ 마당에 뒹구는 벽돌을 모아/ 우물을 메우며/ 우리 집에 누가 불냈어?”(‘우물 깊은 집’)

자학과 가학의 위악 속에 황량한 실존을 담아내는 시들이 많다. “우리가 사는 현대/ 그 잘난 현대가 행방불명이다/ 죽었다는 신이 자꾸 새로 생겨나/ 구조대가 찾지 못하는 것은 현대다/ 소리 없는 경광등이 눈발을 뒤집어쓴다”(‘눈 속의 구조대’) 무한경쟁의 무간지옥에서 참회(懺悔)는 사치스러운 감정이다. 그는 시베리아에는 ‘참’(懺)이라는 동물이 사는데, 조난자들은 이 참의 배를 가르고 들어가 추위를 피하고 내장을 씹어 먹으며 살아남는다고 ‘산해경’ 같은 이야기를 산문시 ‘참’에 풀어놓는다. “참이 특징이라면 뭐니 뭐니 해도 뜨겁다는 것… 이 짐승이 딛고 지나간 곳은 눈이나 얼음이 흥건히 녹아… 목숨을 부지한 조난자는 차마 동료를 죽이고 그 덕분에 살게 되었다는 것을 밝히기를 꺼린다”



‘맛이 좋고 영양 많은 미국식 간식’에 대한 명상을 한 지 30여 년 만에 그는 “온통 맥도날드인 세상에서/ 우리는 장소를 잃어버렸다”고 ‘시일야방성대곡’을 한다. 추억은 그 자리에 머물지만 세상의 변화는 격렬하다. “달짝지근한 냄새를 풍기는 극장/ 트위터를 보고 몰려든 식당/ 벤치가 모자라는 공원/ 주인을 끌고 다니는 포메라니안/ 도시는 쉬지 않고 쌓이는 인내/ 새로 생겨나는 질병”을 목도하는 시인은 “오, 빨리 사라져버려라/ 나는 사라져 버려라/ 내가 없는 완벽한 세상/ 내가 없으면 더욱 아름다운 세계!”(‘내가 없는 세상’)라고 자학하고, 당부한다.

“밟아라, 밟아라/ 나는 도둑의 발자국도 다정하게 안아 주는 첫눈이 아니냐?/ 이제 당신의 능력을 보여 다오/ 내가 만든 풍경을 독자여/ 완성시켜 다오/ 밟혀도 소리 내지 않고 울부짖지 않는/ 밝히면서 사라지는/ 나는/ 첫눈”(‘첫눈’)

 

조용호 문학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