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여러 문자와 한글-한글 창제의 비밀을 밝히다/정광 / 지식산업사 / 1만8000원
최근 개봉한 영화 ‘나랏말싸미’가 훈민정음 창제 주역을 세종대왕(재위 1418∼1450)이 아닌 승려 신미(信眉)로 그리는 등 역사왜곡 논란에 휘말리면서 한글이 반포된 과정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칭기즈칸 손자인 쿠빌라이 칸이 원을 세운 다음 제정한 파스파 문자가 한글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파격적 주장을 펼친 정광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가 세종과 신미에 관한 독특한 견해를 내놨다.
정 교수는 신간 ‘동아시아 여러 문자와 한글’에서 “훈민정음 제정에서 신미대사 공이 절대적이라는 재야학자 시각은 신빙성이 떨어진다”면서 “신미대사는 실담(悉曇·중국에 전래한 인도 범자)에 의거해 모음 11자를 추가했다”고 주장했다.
저자는 세종 25년(1443)에 제정된 훈민정음 27자는 모두 초성, 즉 자음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이듬해 최만리가 올린 반대 상소도 초성 27자만을 비판했는데, 나중에 초성 17자에 신미가 제안한 모음 11자를 합쳐 28자를 완성했다고 덧붙였다. 즉 한글은 세종과 가족, 불가 학승(學僧)이 힘을 합쳐 만든 산물이고, ‘월인석보’(月印釋譜)라는 불서에 훈민정음 언해본을 첨부해 간행한 것이 그 증거라고 저자는 강조했다.
한편 정 교수는 2015년 저서 ‘한글의 발명’을 내놓은 뒤 발표한 논문을 모은 이번 책에서도 한글이 백지상태에서 고안된 문자가 아니라 파스파 문자를 비롯한 동아시아 문자와 교류를 통해 만들어진 글자라는 견해를 고수했다. 그는 한글에서 왜 기역이 가장 먼저 나오는지에 대해 명확하게 답하는 학자가 없다면서 티베트 문자와 파스파 문자가 모두 케이(k) 발음으로 시작하고, 이러한 현상은 고대 인도 범자에서도 나타난다고 지적했다.
저자는 “그동안 우리는 국수주의적 입장에서 오로지 한글에 대한 예찬과 신성화로 일관했다”며 “한글에 대한 비교연구가 결코 이 문자의 우수성과 민족 긍지를 훼손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