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에 대사가 없던 그 시절에도 음악은 존재했다. 몽타주를 따라 오르간 선율이 극장을 메우면, 아무런 말을 하지 않아도 주인공의 마음은 관객들에게 오롯이 전달됐다. 세월이 흘러 변사 등은 사라졌지만 배경음악(OST)의 역할은 오히려 더 커졌다. 관객들은 영화와 드라마가 끝난 뒤에도 OST를 들으며 여운을 이어나간다. 최근 몇 년 사이 국내 음원차트에서 OST를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렇다 할 드라마나 영화가 없던 탓이다. 하지만 tvN 드라마 ‘호텔 델루나’, 영화 ‘알라딘’ 등의 흥행으로 주춤했던 OST 시장이 다시 살아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
5일 국내 6개 주요 음원 사이트의 음원 소비량을 조사하는 가온차트에 따르면 지난해 연간 음원 순위 톱400에 든 드라마 OST는 31곡에 그쳤다. 가온차트가 음원 소비 집계를 시작한 2010년 이후 가장 적은 수치다. 연간 음원 400위권에 드라마 OST 67곡이 올라간 2016년과 비교하면 절반에도 못 미친다.
김진우 가온차트 수석연구위원은 특정 드라마의 흥행에 따라 전체 OST 시장점유율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고 분석했다. 2016년 방영된 ‘태양의 후예’는 시청률 40%에 육박했고, 덩달아 OST인 ‘이 사랑’이 연간차트 4위, ‘유 아 마이 에브리띵’(You Are My Everything), ‘올웨이즈(Always)’가 각각 6위, 10위에 올랐다. 반면 지난해 지상파 3사에서 시청률 20%를 넘긴 드라마는 단 한 작품도 없었다.
하지만 최근 들어 OST가 다시 차트에 오르기 시작했다. ‘호텔 델루나’의 OST인 거미의 ‘기억해줘요 내 모든 날과 그때를’은 지난 4일 오후 6시 공개된 이후 단숨에 멜론, 지니, 벅스 등 국내 주요 음원차트 1위에 올랐다. 앞서 공개된 태연의 ‘그대라는 시’와 헤이즈 ‘내 맘을 볼 수 있나요’, 청하의 ‘그 끝에 그대’, 십센치의 ‘나의 어깨에 기대어요’, 양다일의 ‘너만 너만 너만’, 먼데이 키즈와 펀치의 ‘어나더 데이’ 등 발매된 OST 수록곡 모두 차트 상위권을 메우고 있다. 드라마 OST가 이처럼 높은 성적을 기록한 것은 평균 시청률 20%가 넘었던 tvN 드라마 ‘도깨비’ OST 이후 약 2년6개월 만이다.
영화 분야에서도 OST의 힘을 다시 주목하고 있다. 특히 개봉 71일 만에 1200만 고지를 넘긴 영화 ‘알라딘’의 장기 흥행에는 음악의 역할이 컸다. 지니의 등장곡 ‘아라비안 나이트’ 등 흥겨운 음악들은 ‘알라딘’이 흥행 뒷심을 발휘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특히 자스민 역의 나오미 스콧이 부른 ‘스피치리스’(Speechless)는 ‘알라딘’의 대표곡인 ‘어 홀 뉴 월드’(A Whole New World)보다 더 큰 사랑을 받으며 영화 개봉 두 달여 동안 꾸준히 음원 차트 상위권을 지키고 있다.
‘알라딘’은 지난해 ‘보헤미안 랩소디’에 이어 영화 관람 문화를 변화시키는 데 공을 세웠다. ‘알라딘’의 흥겨운 OST들은 영화관의 침묵을 깬 채 관객들이 함께 노래를 따라 부르거나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싱어롱’과 ‘댄스어롱’ 등 이색 상영회로 이어지기도 했다.
권이선 기자 2sun@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