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미네소타는 기독교의 전통이 강한 ‘바이블 벨트’(Bible belt) 북부에 자리 잡은 도시다. 젊은이 중에는 대학에 와서야 “처음으로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을 만났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곳에서 불교를 가르친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기독교적 세계관이 확고한 학생들에게 불교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홍창성 교수는 미네소타주립대에서 불교철학을 강의하고 있다. 올해로 13년째 이어지는 수업이다. 불교를 아예 모르다시피 하는 학생 눈높이에 맞추어 쉽게 가르쳐야 한다. 한국을 찾은 홍 교수가 지난달 30일 기자들과 만나 소개한 ‘미네소타주립대학 불교철학 강의’는 이런 경험이 집적된 결과물이다. “누구나 알아들을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개념과 방법론”을 활용한 강의 내용을 모은 것이라 불교철학을 어렵게 여기는 한국 독자들에게도 유용하다. 흔히 듣지만, 막상 제대로 알지는 못하는 불교 핵심 개념을 찬찬히 뜯어볼 수 있다.
◆윤회, 제각각의 촛불 이어 켜기
◆“열반이 주는 선물을 찾지 말라”
열반은 삶의 고해에서 벗어난 상태다. 깨달음 끝에 이른 궁극의 경지로 이해된다. 그래서 열반은 영원불변한 평화나 환희, 혹은 유한한 욕구를 극복하고 얻는 큰 기쁨 ‘열락’(悅樂)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홍 교수는 이런 이해가 “열반이라는 개념의 논리적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오는 오류들”이라고 단언헸다.
그는 “번뇌의 불이든 욕망의 불길이든 그것이 이제는 다 타 버렸거나 아니면 큰 바람이 훅 불어와 꺼져 없어졌다는 것”이 열반의 전부라고 적었다. 열반의 상태는 서양의 신이나 인도의 브라만처럼 “절대적인 존재로서의 실체”도 아니다. 홍 교수는 “열반이 가져다준다고 허위 광고되어 온 굉장하고 근사한 어떤 선물을 찾으려고 하는 순간 우리는 ‘고래’로 흘러가는 집착의 깊은 골로 다시 빠져 들어가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만약 어떤 이들이 열반이란 어떤 영롱한 실체로서의 참나, 참마음, 불성(佛性) 같은 것들을 깨치면서 이르게 된다고 생각한다면 이것은 최소한 불교에서 말하는 열반이 아니라는 점만은 알아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자비, “뜨거운 사랑이 아닌 쿨한 배려”
도덕적이고 이타적인 삶은 종교의 중요한 주제다. 불교의 경우라면 자비를 떠올리게 된다. 홍 교수는 자비를 “뜨거운 감정이 넘치는 ‘핫’한 것이 아니라 이성을 바탕으로 차분히 이루어지는 ‘쿨’한 것”이라고 규정했다. 나보다 못하고, 불쌍한 사람들에 대해 슬퍼하고, 안쓰러워하며 도움을 주려는 감정적인 상태가 아니라는 이야기다. 불교가 뜨거운 감정에서 비롯되는 모든 집착에서 벗어나 전적으로 자유로운 깨달음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보면 중생의 구제가 뜨거운 사랑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자비는 “타인을 향한 이해타산 없는, 즉 이기심 없는 배려심 또는 보살피는 마음”이며 “붓다의 무아(無我)에 대한 가르침을 체득했을 때 자연스레 우러나오기 마련”인 덕목이다. 왜냐하면 “누구나 가진 자기 배려심과 자기를 보살피는 마음에서 자기가 사라지게 되니 배려심과 보살피는 마음이 타인에게로 흘러 넘쳐 이타행으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홍 교수는 이타행이 따뜻하거나 안쓰러워하는 감정으로 하기보다 차분하게 쿨한 판단으로 할 때 더 좋은 결과를 낸다는 심리학의 성과를 이런 주장의 근거로 내세웠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