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프리즘] 태풍과 허리케인

전세계 年 80개 열대저기압 발생 / 지역따라 태풍·허리케인으로 불러 / 국내 태풍 피해 연간 1조원 달해 / 예보 정확성 제고 충분한 투자를

우리나라에는 8, 9월에 태풍이 자주 상륙하므로 본격적으로 태풍시즌에 접어들었다. 어린 시절 로봇 태권브이와 마징가 제트가 싸우면 누가 이길지 말싸움을 해보았을 것이다. 어른이 돼서는 ‘태풍’과 ‘허리케인’ 중 어느 게 더 강한지 언쟁이 있었을 법하다. 평균적인 세기나 숫자로 보면, 태풍이 허리케인보다 훨씬 강하고 발생 개수도 많다. 이는 지역에 따라 각기 다른 이름으로 불리는데 북서태평양에서는 태풍, 북중미에서는 허리케인, 인도양과 남반구에서는 사이클론이라고 부른다.

그중 ‘태풍’은 날짜 변경선 서쪽의 북서태평양에서 발생하는 수많은 ‘열대요란’(작은 규모의 저기압) 중에서 중심 부근의 최대 풍속이 초당 17m 이상인 강풍을 동반하는 열대저기압으로 발달한 것을 가리킨다. 열대저기압은 열대 해양에서 발생해서 온난전선이나 한랭전선이 만들어지지 않는 대류권 내 저기압성 순환이다. 열대저기압의 발생 원인과 형태는 중위도 지방에서 발생하는 온대저기압과 완전히 다르다. 온대저기압은 전선을 동반하고 중심을 둘러싼 등압선이 호빵 모양으로 일그러져 있는 반면 열대저기압은 전선을 동반하지 않고 등압선이 원형에 가깝다.

허창회 서울대 교수 대기과학

열대저기압은 발생 후 열대지역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동풍계열의 무역풍을 따라 서쪽으로 향해 북상하며, 중위도에 진입하면서 편서풍을 만나 동쪽으로 전향한다. 그래서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치는 대부분의 태풍은 C자 형태로 이동한다. 반면 온대저기압은 중위도에서 발생하기에 편서풍의 영향을 받아 서쪽에서 동쪽으로 움직인다. 이 때문에 육상의 강수지역이 대략적으로 서해안부터 내륙으로 움직인다. 저기압을 유지시키는 에너지원도 서로 달라서 열대저기압은 수증기가 응결하면서 방출되는 잠열이 사용되고, 온대저기압은 성질이 서로 다른 공기가 만나서 상대적으로 따뜻한 공기가 상승해서 증가되는 위치에너지가 사용된다.



허리케인도 태풍과 마찬가지로 중심 부근의 최대 풍속이 초당 17m 이상인 열대저기압이다. 단지 태풍과 다른 점은 발생 지역이 북미대륙의 동쪽인 북대서양과 서쪽인 동태평양이라는 것이다. 열대 해양에서는 태풍, 허리케인, 사이클론으로 발달할 수 있는 소용돌이 모양의 구름을 거느리고 있는 열대요란이 전 지구적으로 항상 한두 개나 그 이상 발생해 있다. 연간으로 보면 수백∼수천개의 열대요란이 발생하는 셈이다. 전 지구적으로 연간 80여개의 열대저기압이 발생하는데 태풍이 30개, 허리케인이 23개(북대서양에서 9개, 동태평양에서 14개) 정도이다. 평균적인 세기를 보면 태풍이 초당 42m, 허리케인이 초당 36m 정도이다.

북대서양에서 발달하는 허리케인은 내륙에 진입하면 거의 전부 미국 내 어느 지역이든 피해를 입힌다. 반면 여러 국가로 이뤄진 동아시아에서는 태풍이 발생해도 특정 국가에 상륙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북서태평양 태풍의 길목에 위치한 필리핀이나 대만에도 태풍이 영향을 끼칠 확률은 30%를 넘지 않는다. 태풍이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칠 확률도 10% 혹은 그 이하여서 태풍에 대한 긴장도는 미국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약하다. 그러나 태풍의 피해는 적지 않아서 우리나라는 매년 1조원 정도(국가 예산의 0.2%)의 피해를 입는다. 미국의 허리케인에 의한 연간 피해액은 167억달러(약 20조원)로 국가 예산의 0.5%에 이르는 것으로 보고돼 있다.

지난달에는 태풍 ‘다나스’가 우리나라에 상륙해 제주와 남부지역에 많은 비를 뿌리고 큰 피해를 끼쳤다. 이번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친 태풍 ‘프란시스코’는 상대적으로 약했지만 적지 않은 피해를 끼쳤다. 태풍은 초가을로 갈수록 더욱 강해진다. 지금 발달하고 있는 태풍 ‘레끼마’와 ‘크로사’가 우리나라를 비껴가기를 바란다. 우리나라에 영향을 끼칠 태풍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도록 기상청에서는 태풍 예보의 정확성을 높여야 할 것이고, 재해를 대비하는 관계 기관과 온 국민은 태풍에 대한 긴장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것이다. 특별히 태풍 예보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한 연구에 투자를 소홀히 해서는 안 될 것이다.

 

허창회 서울대 교수 대기과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