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최근 보낸 친서에서 한·미 연합지휘소훈련이 끝나는 대로 북·미 실무협상 재개를 희망한다는 입장을 전해왔다고 10일(현지시간) 밝혔다.
김 위원장은 친서를 통해 지난 6월 말 이후 5번에 걸쳐 미사일 발사를 계속한 데 대해 사과의 뜻을 밝히면서 한·미 연합훈련 뒤에 미사일 발사도 중단하겠다고 트럼프 대통령에게 통보했다. 이에 따라 이달 말 북·미 실무협상 개최에 탄력이 붙을 것으로 보인다.
◆ 北·美 ‘톱다운 외교’ 재가동… 비핵화 협상 돌파구 열리나
북·미 정상의 6·30 판문점 회동 이후 교착상태에 빠졌던 비핵화 실무협상이 양국 정상의 톱다운식 ‘친서 외교’를 통해 돌파구가 마련되는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미 연합지휘소훈련 후 협상 재개를 원한다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친서를 공개하면서다.
◆北 미사일 발사에도 美의 협상 재개 의지 확고
트럼프 대통령의 김 위원장 친서 공개는 북한이 10일(한국시간) 오전 5시34분과 오전 5시50분쯤 미사일 두발을 발사한 것으로 알려진 지 15시간여 만이다. ‘한·미 연합훈련 뒤 협상 재개 희망’이라는 김 위원장의 친서 내용을 신속하게 공개한 것은 북한 미사일 발사로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을 진정시키려는 의도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의 미사일 발사 이유를 설명한 것은 미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한 것으로 관측된다. 김 위원장이 한·미 연합훈련이 끝나면 북한의 미사일 발사도 중단될 것이라고 통보했다는 점을 강조한 것에서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따라 이달 하순 한·미 연합훈련 종료 뒤 북·미 실무협상이 재개될 가능성이 높아진 것으로 보인다. 앞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두어 주 지나 협상하는 걸 계획 중이라고 말한 바 있다. 북한 외무성은 이날 담화에서 향후 조미(북미) 대화에 좋은 기류가 생길 수 있다고 밝혔다.
◆8월 실무→9월 고위급→연내 북·미 정상회담 전망
북·미 비핵화 담판의 시간표는 8월 말 또는 9월 초 북·미 실무협상에 이은 9월 말 북·미 고위급 회담을 거쳐 연내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는 방향으로 짜일 것으로 점쳐진다. 이 시나리오의 관건은 실무협상에서 비핵화 최종단계 합의를 이뤄낼 수 있을지다.
한·미는 늦어도 9월 초까지 실무협상이 진행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9월 하순 뉴욕에서 열리는 유엔 총회 계기로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이 만날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있어서다. 실무협상에는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와 김명길 전 베트남주재 대사가 각각 대표로 나설 것으로 예상된다.
북·미는 실무협상에서 비핵화와 보상을 주고받는 절충을 시도하게 된다. 북·미는 하노이 노딜 이후 서로에게 새 해법을 요구해왔다. 북한은 영변 핵 시설 폐기를 담보로 대북 제재 완화와 체제 보장을 원하고 있다. 이에 미국은 북한에 ‘영변 핵 시설 폐기+α’를 내놓을 것을 압박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북한이 영변 핵 시설을 폐기하고 핵 프로그램을 동결하면 미국이 제재를 완화하고 연락사무소를 개설하는 딜이 거론된다.
대북 실무협상을 총괄하는 비건 대북특별대표는 지난 6월 “6·12 싱가포르 공동성명을 동시적, 병행적으로 진전시키기 위해 북측과 건설적인 논의를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바 있다. 미국이 그동안 주장해 왔던 ‘빅딜’ 대신에 비핵화 단계별로 보상하는 ‘단계별 접근’을 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북·미 실무협상이 진전되면 고위급회담은 3차 정상회담 준비를 논의할 것으로 관측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 위원장의 친서를 소개하면서 “나는 너무 머지않은 미래에 김정은을 보기를 원한다”며 제3차 정상회담 개최에 대한 희망을 피력했다.
반면 북·미가 실무협상에서 이견만 확인한다면 고위급회담은 비핵화와 보상을 절충하는 회담으로 성격이 바뀔 수도 있다. 고위급회담에서 딜이 성사된다면 3차 정상회담도 가시권에 들어설 수 있다. 미국 대선(내년 11월) 일정을 고려하면 트럼프 대통령이 연내 3차 정상회담을 열고 외교적 성과를 얻어 이를 대선에 활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김 위원장도 지난 4월 3차 정상회담을 언급하며 “연말까지 미국의 용단을 지켜보겠다”고 시한을 못박은 점도 연내 정상회담 가능성에 무게가 실린다.
그러나 북·미가 협상에서 접점을 찾기는 만만치 않아 보인다. 하노이 회담에서 ‘영변’만을 협상 의제로 제시했던 북한이 미국의 비핵화 최종단계 논의에 동의할지가 불투명하다. 설령 북한이 수용하더라도 미국이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제공할 수 있을지도 낙관하기 어렵다.
워싱턴=국기연 특파원 kuk@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