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산더미 집안일에 맞고 성추행당해도… 말 못하는 요양보호사

고용불안 탓 부당노동 굴레에 / “안아보자” 희롱에 온갖 가사 노동 / 10명 중 6명 “신체·언어폭력 피해” / 피해자 64% “불이익 우려 참는다” / 요양보험 운용 기관 80% 민간업자 / 퇴직금 등 안 주려 부당해고 빈번 / “돌봄노동 대한 국가 책임 명시를”

“제가 파출부인지 요양보호사인지 헷갈릴 때가 많아요.”

2년째 방문 요양보호사로 일하고 있는 50대 A씨는 자신을 가사도우미로 대하는 수급자로 인한 고충을 털어놨다. A씨가 담당했던 한 어르신 집은 딸과 사위, 손녀 등 다섯 식구가 함께 살고 있었다. 이 어르신은 방문할 때마다 집안 전체 청소는 물론, 딸과 사위 것까지 포함해 수북이 쌓아둔 세 사람의 옷가지 빨래를 해달라고 한다. 또 김장, 반찬 만들기 등 집안 가사 전반을 A씨에게 떠맡겼다. A씨는 “교육을 받고 국가 자격증 시험까지 통과해서 파견을 나가는 건데, 실제 어르신과 그 가족들은 우리를 맘대로 부릴 수 있는 대상으로 인식해서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고령화 사회로 접어들면서 노인장기요양서비스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지만, 이에 종사하는 요양보호사들의 처우는 열악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들은 낮은 급여 수준과 고용 불안정, 수급자로부터 부당한 대우 등에 노출돼 있었다. 양질의 장기요양서비스를 안정적으로 제공하기 위해서는 돌봄노동인력에 대한 처우개선이 시급하다.

12일 세계일보가 입수한 ‘노인 장기요양인력 특정 성별영향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요양보호사의 44.3%가 돌봄대상자에게 언어폭력을 당하고 있다고 답했다. 또 20.6%가 신체적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성희롱·성폭력 피해를 본 경우도 14.3%에 달했다. 보고서는 한국여성정책연구원이 여성가족부의 의뢰를 받아 1년 이상 근무한 요양보호사 350명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설문조사를 했다.



응답자의 64.0%가 폭력을 경험하더라도 ‘개인적으로 참고 넘긴다’고 답했다. 담당 요양센터나 수급 대상자·보호자에게 얘기하면 이의를 제기한 요양보호사가 일을 그만두게 되는 등 불이익을 받기 때문이다.

 

2014년 말부터 재가 요양보호사로 활동하고 있는 B씨는 최근 돌본 70대 편마비(片麻痺) 남성어르신을 돌보면서 ‘손잡아보고 싶다’, ‘안아보자’는 말을 들으며 지속적으로 성추행을 당했다. B씨는 이 사실을 담당 요양센터에 알렸지만, 센터 측은 “그전에도 이런 일이 많았다”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광주에서 근무하는 또 다른 요양보호사는 “수급자였던 할머니가 ‘나 때문에 센터와 당신이 돈을 번다’며 돈을 달라고 요구한 적이 있다”며 “이를 센터에 말했더니 결국 사직서를 쓰고 그만두도록 했다”고 말했다.

응답자 5명 중 2명만 ‘장기근속장려금’을 받은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10명 중 1명은 이 제도를 잘 모른다고 답했다. 장기요양서비스 종사자의 처우개선을 위해 2017년 도입한 장기근속장려금제도는 동일한 장기요양기관에서 일정 기간 이상 근무한 종사자에게 지급되는 지원금이다. 3∼5년 근무 시 6만원, 7년 이상 근무할 경우 최대 10만원이 매달 지급된다. 한 요양보호사는 “센터에서는 주휴수당, 4대보험, 퇴직금 지급 등을 피하기 위해 근로계약서를 쓰지 않거나 1년이 되기 전에 이유 없이 해고하고 센터 명의를 수차례 변경하는 등의 방법을 쓴다”며 “이런 상황에서 장기근속하는 사람이 드물기 때문에 사실상 유명무실한 제도”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요양기관의 80% 이상이 개인사업자다 보니 관리부실이나 회계 비리, 노동법 위반 등의 문제점이 발생하기 쉽다고 지적한다. 한국여성정책연구원 구미영 연구위원은 “현행 법, 제도에서는 요양보호사의 돌봄노동에 대한 지위나 조건에 대한 국가의 책임이 애매모호하다”며 “장기요양인력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법률에 명시하고, 지속가능한 장기요양인력 수급을 위한 계획을 짜야 한다”고 했다.

 

남혜정 기자 hjnam@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