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通美排南’ 전략 노골화하는 北… 파장 축소에만 급급한 南 [뉴스분석]

北, 靑·정부 등 거론 막말성 발언 / 협상 과정 南 철저히 무시 의도 / 靑 “한·미훈련 뒤 협상 의지 표현 / 北 담화문 진의 파악하는게 중요” / 전문가 “北, 美와 협상 집중 피력 / 정부, 北에 침묵하는 것은 잘못”

북한이 미국과 직접 대화하고 한국과 대치상황을 조성하는 ‘통미배남’(通美排南)전략을 들고 나왔다. 1994년 ‘제네바 합의’ 체결 후 북한이 한국을 배제한 ‘통미봉남’(通美封南)전략을 넘어서는 강경기조라는 평가다.

1993년 북한은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를 선언한 뒤 핵 개발을 빌미로 미국과 협상을 벌여 1994년 미국으로부터 중유 및 경수로를 받기로 한 제네바합의를 체결했다. 이 과정에서 정부는 협상판에 제대로 참여하지 못한 채 북한의 경수로 건설 비용만 부담했다.

 

지난 11일 권정근 북한 외무성 미국 담당국장의 담화문은 전통적인 통미봉남을 넘어 통미배남의 의미까지 담았다는 분석이다. 단순히 미국과 협상하며 남한의 입지를 축소하는 데 그친 게 아니라 청와대와 국방부를 직접 거론하고 심지어 조롱하는 듯한 발언까지 내뱉으며 남한을 핵 협상 과정에서 철저히 무시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이다.



북한은 지난 2월 베트남 하노이에서 열린 제2차 북·미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중국, 러시아와 잇달아 정상회담을 열며 미국이 아닌 ‘새로운 길’에 대한 가능성을 내비쳤다. 북한은 이 전략으로 협상장을 떠난 미국을 다시 협상판으로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의 평양정상회담에 이은 4차 남북정상회담 제의와 김연철 통일부 장관의 고위급회담 제의 등에 대해 일체 반응을 보이지 않은 채 미국과 ‘직거래’에 나서며 한국을 협상에서 배제해 왔다.

 

북한이 협상가인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직접 담판을 하는 게 유리하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동시에 한국을 압박하며 군부의 불만을 다독이고, 한·미관계의 틈을 벌리는 효과를 노리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북 경협의 추진이 지지부진한 데 대한 불만도 드러낸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남북 화해 무드 조성을 위해 전력을 기울여 온 정부는 북한의 강경발언에 대해 의미를 축소하기 급급한 상황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12일 북한 외무성 담화문에 대해 “결국 (한·미연합) 훈련이 끝나면 (비핵화를 위한 북·미 간) 실무협상을 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의 담화로 모욕감을 느낀 국민이 적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북쪽에서 내는 담화문들은 통상 정부가 내는 담화문과는 결이 다르고, 쓰는 언어가 다름은 대부분의 사람이 다 인지하고 있는 부분”이라며 “담화문의 진의가 무엇인지, 무엇을 말하고자 함인지를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북한이 담화문에 언급했던 국방부도 별다른 입장을 내지 않고 대북 업무의 주무부서인 통일부도 간략한 입장만을 내는 데 그쳤다.

전문가들은 당분간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에 집중하겠다는 의사를 피력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정부를 향해 조롱하는 듯한 발언을 듣고도 아무런 입장을 내지 않는 것은 잘못이라고 지적한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북한의 배남(排南)이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북·미 협상에 먼저 집중하겠다는 의사를 미국을 향해서도 피력한 것”이라면서도 “청와대나 국방부 장관을 직접 겨냥한 발언이 있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예의나 외교관례를 벗어난 부분이기 때문에 따끔하게 지적하고 넘어가야 하는데 정부가 너무 침묵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북한이 미국과의 대화를 재개한 뒤 다시 한국에 화해의 제스처를 취할 가능성은 남아 있다. 북한은 대내적으로는 남한에 대한 원색적 비난 보도를 하지 않고 있다.

홍 실장은 “북한의 배남이 국면적일지 굳어지는 것인지를 잘 따져야 하는데 현재로서는 한·미 연합지휘소훈련 이후 북·미 대화가 이뤄지면 9월 중순 유엔총회를 계기로 북·미 고위급회담이 이뤄지고 그 이후 다시 북한도 남한과 대화를 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조병욱·박현준 기자 brightw@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