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엔은 불합리하다는데… 韓서 인정받지 못하는 국제인권기준

인권위, “법원, 국제인권기준 적극 활용해야” / 인권침해 사건 15건 인용됐지만 구제조치 전무

유엔 인종차별철폐위원회는 지난 2015년 5월 인종적으로 한국계가 아닌 외국인 영어교사에게만 의무적으로 후천성면역결핍증(AIDS·에이즈) 검사를 시행하는 한국의 제도가 불합리하다고 판단했다.

 

한국에 살고 있는 영어교사가 직접 위원회에 문제를 제기한 데 따른 것으로, 위원회는 한국 정부에 진정인에 대한 임금 보상 등 손해배상과 외국인 혐오 대책 마련을 권고했다. 또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이듬해 9월 권고사항의 실효적 이행을 위한 조치를 권고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 외교부는 국내 실정법상 손해배상 의무가 발생하지 않는다며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을 위원회에 회신했다.

 

헌법상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지닌다고 규정돼 있음에도 국제인권규범이 대부분 한국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인권위는 재판규범에 국제인권기준이 적극 활용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13일 인권위에 따르면 한국에서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 등에 17건의 개인 진정이 제기돼 이 중 15건이 받아들여졌지만 단 한 건도 구제조치가 이뤄지지 않았다. 한국은 1990년부터 개인이 자신의 인권침해 사건을 국제기구인 자유권규약위원회 등에 진정할 수 있는 ‘개인통보’ 절차를 인정했는데, 그간 이 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하게 적용됐던 셈이다.

 

인권위는 1991년 대우조선 파업 당시 노조의 쟁의를 지지하는 성명을 냈다는 이유만으로 구속돼 유죄를 확정 받은 손모씨 사건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손씨는 유죄가 선고된 이듬해 개인통보 절차에 따라 1992년 자유권규약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했고, 위원회는 1995년 배상 등 구제조치를 제공하고 관련 법률을 재검토하라고 권고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아무런 구제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이 결정을 근거로 한 손씨의 손해배상 소송도 인정되지 않았다.

 

인권위는 헌법 제6조에 ‘헌법에 의하여 체결․공포된 조약과 일반적으로 승인된 국제법규는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가진다’고 규정돼 있지만 국제인권규범이 여전히 국내법과 같은 정도로 인식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국제인권기준이 국민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다며 법원이 재판규범 중 하나로 국제인권조약기구 등의 결정을 적극 수용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인권위는 14일 이 같은 내용을을 논의하기 위해 대한변호사협회에서 ‘법원의 국제인권기준 적용 심포지움’을 개최할 예정이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