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전 대법원장 시절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 사건 재판에서 증거로 제출된 법원행정처 작성 보고서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 사실을 ‘매춘’으로 볼 여지가 있다는 내용이 담긴 것을 두고 법정 공방이 벌어졌다.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현직 법관은 증인으로 나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35부(부장판사 박남천)는 14일 양 전 대법원장과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직권남용 등 사건에 조모 부장판사를 증인으로 불러 신문했다. 조 부장은 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으로 근무하던 시절 임종헌 전 행정처 차장의 지시를 받고 위안부 손해배상청구 소송 관련 보고서를 작성했다.
검찰은 조 부장을 상대로 보고서에 ‘일본 위안부 동원 행위가 국가의 주권 행위인지, 상사적(매춘) 행위인지 등이 아직 명백하지 아니한 경우’라고 기재한 이유를 물었다. 검찰은 “괄호 안에 매춘이란 표현을 사용한 것은 임 전 차장의 지시였느냐”면서 “매춘이란 표현은 피해자에게 귀책사유나 고의가 있다고 인정되는 표현인데, 현직 법관이 보고서를 작성하며 사용하기에 부적절하다고 생각하지 않았느냐”고 질문했다.
조 부장은 임 전 차장이 구체적 표현을 지시한 건 아니라고 해명하며 “괄호 안 표현 하나를 계속 집어서 말씀하시니 마치 (제가) 위안부 피해자를 그런 식으로 생각하는 것처럼 보이게 말씀하시는 것 같다”며 당혹감을 드러냈다. 이어 해당 표현을 사용한 이유에 대해선 ‘위안부’에 대한 일본 정부의 입장을 고려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조 부장은 “현재 일본은 위안부 동원이 국가적인 주권 행위가 아니고 상사적인 행위라며 책임을 부인하고 있다”며 “그런데 주권 행위를 부인해야 재판권이 인정되고, 주권 행위를 인정하면 재판권이 없어지는 딜레마가 있다”고 덧붙였다.
양 전 대법원장 측 변호인은 이러한 검찰 측 주 신문이 공소사실과 관련이 없다며 이의를 제기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이런 질문은 형사소송규칙이 정한 ‘모욕적 신문’이라 평가할 여지가 충분하다”고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공소사실과의 관계에 비춰 검찰이 물어볼 수 있는 정도라고 생각한다”고 일축했다.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조 부장에게 재차 “일제의 위안부 동원 행위 성격을 상사적 행위라고 생각한 적이 전혀 없고, 보고서 취지도 행정처나 증인이 위안부 동원 행위가 상사적 행위라는 걸 전제로 작성한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이냐”고 물었고, 조 부장은 “당연하다”고 대답했다.
조 부장은 2015~2016년 법원행정처 기획조정심의관으로 근무하면서 임 전 차장의 지시로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한 것으로 조사됐다. 보고서에는 해외사례, 법률적 검토, 소송 진행에 대한 분석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검찰은 임 전 차장이 조 부장에게 보고서 작성을 지시하면서 위안부 손해배상 소송과 관련 ‘주권면제’, ‘통치행위’, ‘소멸시효’ 등을 언급했고, 임 전 차장의 이런 행동이 재판 진행 및 결론 등에 영향을 미쳐 법관의 재판상 독립을 침해하는 것이라고 보고 있다.
유지혜 기자 kee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