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재 신채호 며느리의 일침 “한국 땅에서 나오는 쌀먹고 어떻게”

아베 총리에 사죄한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 ‘반일 종족주의’ 저술한 이영훈 교수 비판
단재 신채호 선생의 며느리 이덕남 여사. 연합뉴스

 

“한국 땅에서 나오는 쌀알을 먹고 살면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하나”

 

독립운동가 단재 신채호 선생의 며느리 이덕남(76)여사는 최근 일본 아베총리에게 사죄한 주옥순 엄마부대 대표를 거론하며 이같이 비판했다.

 

광복절인 15일 연합뉴스 보도에 따르면 이 여사는 “우리나라 친일파가 더 문제예요. 1945년 8월 15일 이후 친일파가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게 오늘까지 이어졌어요” 라고 목소리를 냈다.

 

이어 이 여사는 ‘반일 종족주의’ 대표 저자로 논란이 된 이영훈 전 서울대 교수,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사죄한다”고 발언한 주옥순 엄마부대봉사단 대표를 거론하며 ”일본놈보다 더 심하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 땅에서 나오는 쌀알을 먹고 살면서 어떻게 그런 짓을 하나”라며 “내가 나이를 먹어 그렇지, 60살만 됐어도 가만 안 둔다”며 분을 삭이지 못했다.

 

이 여사는 단재의 둘째 아들인 신수범 선생 부인이다. 신수범 선생은 1991년 작고했다. 신수범 선생은 단재의 중국 베이징 망명 시절 태어났다. 남편은 1살 갓난애기때부터 1922년 어머니인 박자혜 선생과 한국으로 돌아와 이후 쭉 국내에서 살았다.

 

시아버지 단재는 베이징에서 따로 살다가 1936년 돌아가셨다고 이 여사는 설명했다. 단재는 독립운동에 참여하다 체포돼 중국 뤼순(旅順) 감옥에서 복역 중 숨졌다.

 

이 여사는 단재와 같은 독립운동가들이 목숨을 바칠 정도로 나라를 사랑했지만 국가가 독립유공자 대우를 소홀히 한다고 비판했다.

 

이 여사는 “현충원에 가보면 17만명이나 되는 무후(無後·자손이 없음) 유공자들이 있다”며 “그분들은 실제로 자손이 없어서 그렇기보다는 호적·국적이 없기 때문에 자손과 연결고리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단재도 무국적이었다가 2009년에서야 국적을 회복했다. 1912년 일제가 식민통치를 위해 호적제를 개편하자 일본 호적에 이름을 올릴 수 없다며 거부하다 광복 후 정부가 호적에 등재된 사람에게만 국적을 부여한 탓에 무국적자가 됐다고 한다.

 

이 여사는 “아버님 국적 회복 운동을 19년간 했다”며 “바로 선 나라였으면 해방된 후 순국선열의 국적을 바로 회복해줘야 했는데 그렇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시아버지와 관련한 이 여사의 투쟁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이 여사는 최근 단재의 옛 삼청동 집터 소유권을 돌려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단재가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산 곳으로 추정되는 삼청동 집터는 망명 후 1912년 국유지로 기록됐다가 단재가 순국한 지 2년이 흐른 1939년 한 일본인 앞으로 소유권 보존 등기가 이뤄졌다. 이후 소유권이 몇 차례 바뀐 끝에 현재는 선학원이 소유하고 있다.

 

이 여사는 “국유지였던 땅이 일본인이 소유권으로 됐을 때 제대로 된 절차나 증거가 없다”며 “대한민국이 팔아먹은 것이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그는 “국가가 이완용 등 친일파 땅은 찾아주면서 독립을 위해 하나뿐인 목숨을 바친 분들의 땅 한 평은 찾아줘 봤느냐”며 “이번에 내가 투쟁의 선봉에 선 것”이라고 했다.

 

한편 1990년 이완용의 증손자가 서울 마포구에 있는 땅을 되찾아서 바로 팔아 치웠고 1992년 이완용 후손들은 서울 북아현동에 있는 땅이 자기들 땅이라면서 국가를 상대로 소를 제기 했고 이에 승소했다. 그리고는 그 땅을 바로 30억 원에 팔아버리고 캐나다로 이민을 가 국민들의 공분을 산 바 있다.

 

양봉식 기자 yangb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