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은 15일 취임 후 3번째를 맞이하는 8·15광복절 경축사 키워드로 ‘경제’를 택했다. 광복절 경축사는 3·1절 기념사, 국회 시정연설과 함께 주목도가 높은 연설 중 하나로 꼽힌다. 일본의 수출규제로 촉발된 경제보복에 대한 국민 감정이 들끓고 있는 상황에서 청와대는 대통령 연설에 세심한 준비를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기꺼이 손잡겠다”… 日에 외교적 해법 제안
‘일본과 확전이냐, 아니냐’는 분수령으로 점쳐졌던 이날 경축사 대일 메시지는 자극적이거나 강력한 표현이 없었다. 한·일 양국이 경축사 이후 공방전을 벌일 만한 빌미도 제공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자국이 우위에 있는 부문을 무기화’, ‘먼저 성장한 나라가 뒤따라 성장하는 나라의 사다리를 걷어차는’ 표현으로 일본의 경제보복을 비판하는 선에서 발언 수위를 ‘톤다운’시켰다. 과거 ‘이순신 장군의 배 12척’, ‘적반하장’ 등을 언급하며 항전을 시사했던 강력한 반일 발언은 하지 않았다. 그러면서 일본이 대화와 협력의 길로 나올 경우 손을 잡겠다는 유화책을 제시했다. “일본이 이웃 나라에 불행을 주었던 과거를 성찰하는 가운데 동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함께 이끌어가길 우리는 바란다”는 당부도 곁들였다.
세간에 찬반이 갈렸던 2020년 도쿄 올림픽을 언급해 주목받았다. 문 대통령은 “지난해 평창동계올림픽에 이어 내년에는 도쿄하계올림픽, 2022년에는 베이징 동계올림픽이 열린다"며 "올림픽 사상 최초로 맞는 동아시아 릴레이 올림픽으로, 동아시아가 우호와 협력의 기틀을 굳게 다지고 공동 번영의 길로 나아갈 절호의 기회”라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도쿄 올림픽에서 우호·협력의 희망을 기대했다. 반일 감정에 방사능 오염 논란이 불거지면서 여당 내에서도 참가 반대 여론이 비등해지고 있는 상황에서 불참 가능성을 일축한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이 이번 사태를 대하는 우리 국민의 태도를 “우리 경제를 지켜내고자 의지를 모으면서도 두 나라 국민들 사이의 우호가 훼손되지 않기를 바라는 수준 높은 국민의식”이라고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전문가들 “양국 긴장 고조 막은 흐름 다행”
◆靑, 사전 여론조사 통해 ‘경제’ 집중
청와대는 민정비서관실, 정책조정비서관실, 정무비서관실 등을 통해 각계각층을 대상으로 경축사에 담겼으면 하는 내용을 수렴했고, 응답한 국민 다수가 경제분야에 높은 관심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경제가 경축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이례적인 연설문이 만들어졌다. 7800여자로 쓰인 경축사에 ‘경제’는 39번 등장했고, 뒤를 이어 ‘평화’가 27번 나왔다. 일본은 12번 언급됐다. 연설문은 영문과 일어로도 번역·배포했다. 일본 언론의 오역을 방지하기 위한 차원으로 알려졌다. 이날 문 대통령의 경축사의 핵심은 ‘평화경제’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다. ‘흔들 수 없는 나라’를 만들기 위해 제시한 3대 목표 중 마지막이지만, 남은 두 가지 목표인 ‘경제강국’과 ‘교량국가’ 역시 한반도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달성할 수 없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의 평화경제는 대선 전인 2015년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였을 때 제시한 ‘한반도 신(新)경제지도’ 구상의 연장선이다.
김달중·홍주형 기자 dal@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