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아파트에서 탈북민 한모씨와 6살 아들이 숨진 채 발견됐다. 그것도 사망한 지 두 달 만에. 경찰은 발견 당시 집에 식료품이 다 떨어져 있었고, 월세가 밀리고 통장에 잔고가 없었다는 점에 비춰 아사(餓死)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1998년 이래 우리나라에 입국해 거주하고 있는 탈북민은 현재 3만3000명을 넘는다. 탈북민은 국내 입국 후 통일부 산하 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하나원)에 머물며 12주 동안 사회적응 교육을 이수한 다음 취업 및 임대주택 알선, 정착지원금 지급, 주민등록 등의 혜택을 받는다. 사회에 나오면 하나센터(탈북민 지역적응센터)가 일정기간 탈북민의 적응을 돕고 관리한다. 이 밖에도 지역별로 거주지보호담당관(지자체), 신변보호담당관(경찰), 취업보호담당관(고용노동부)이 배치돼 거주지·신변·취업 등을 지원해 준다.
이를 위해 북한이탈주민법 등 법령과 제도가 완비돼 있고, 지난 20년간 탈북민 정책도 진화돼 왔다. 그럼에도 한씨 모자는 마지막 순간에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다. 배고파 목숨 걸고 탈북했는데 서울 한복판에서 굶어 죽은 것이다. 안타깝고 충격적인 일이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정부의 탈북민 관리·지원체계에 중대한 허점이 있음이 드러났다.
현행법상 탈북민이 거주지에서 보호받는 기간은 원칙적으로 5년이다. 보호기간 이후라도 요청을 하면 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하지만 2009년 탈북한 한씨는 이런 사실을 몰랐던 것 같다. 앞으로는 보호기간이 끝날 무렵 관계 공무원, 하나센터 직원 등이 관련 제도를 꼼꼼하게 안내하고 연장 여부를 직접 확인토록 해야 한다. 더불어 탈북민이 거주지를 이전할 경우 새 거주지로의 전입 시점에 지역 관할 하나센터 상담사와 자동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또 보호기간이 끝났더라도 관내 거주 탈북민의 생활실태를 직접 확인하고, 상담 등의 지원을 제공하는 생활밀착형 서비스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 한씨 모자는 지난해 10월 서울 관악구로 전입한 이후 아무런 지원을 받지 못했다. 숨진 아동은 어린이집이나 지역아동센터에 등록돼 있지 않았다. 기초생활수급자나 한부모가정 지원 신청도 돼 있지 않았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있었던 것이다.
2017년 정부는 ‘송파 세 모녀 죽음’ 이후 더는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목숨을 잃는 피해가 발생하지 않도록 관련 법률을 정비했다. 3개월 이상 수도요금과 전기요금이 밀리거나 가구주가 사망해 수입이 끊긴 가구는 ‘사회보장정보시스템’(행복e음)에 자동 등록돼 저소득 가구가 요청하지 않더라도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손질했다. 하지만 이 같은 위기가구 발굴 시스템은 이번의 탈북 모자에겐 적용되지 않았다. 그 이유는 시스템의 발동 대상이 공공임대주택과 영구임대주택 거주자로 제한돼 있고, 한씨가 살던 재개발 임대주택은 제외되기 때문이다. 하루빨리 이런 탈북민 차별, 거주지 차별을 철폐해야 한다.
이와 관련, 탈북민 지원을 일반 국민이나 정책 당국자의 시각이 아닌 수요자의 눈높이에 맞춰 실시하는 자세가 절실하다. 현재 정부의 탈북민 정책은 단기적이고 특수화돼 있다는 비판이 있다. 탈북민의 특수성을 강조해 별도로 분리해 지원하고, 관리 기간도 짧아 적응력을 키우기가 어렵다는 것이다. 따라서 탈북민의 취업 교육을 지역사회와 연계하고, 지원정책도 장기적으로 사회복지체계 안으로 흡수해 사회안전망을 확충해야 사각지대를 줄일 수 있다는 지적을 경청할 필요가 있다. 또 여성과 아동 등 사회 취약계층 탈북민에 대한 특별보호 프로그램도 보완해야 한다.
흔히 탈북민은 ‘먼저 온 통일’이라고 말한다. 이들의 성공적인 국내 정착 내지 사회 동화는 ‘통일 예행연습’이라는 중요한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우리가 3만3000명의 탈북민도 포용하지 못하면서 민족통일이니 남북 사회통합이니 이야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차제에 유사 사건의 재발 방지 및 올바른 통일준비의 차원에서라도 정부는 탈북민 사후관리 시스템을 전면 재검토하고 조속히 실효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