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DJ) 전 대통령님은 재임 시절 최규하·전두환·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 등 전직 대통령들과 찍은 한 장의 사진이 기억납니다. 정치보복은 없었습니다.”
18일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김 전 대통령 서거 10주기 추도식 추도사에서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 황교안 대표가 한 말이다. 황 대표는 이 사진을 일컬어 “우리 국민들이 갈망하는 통합과 화합의 역사적 상징”이라고 강조했다.
황 대표가 언급한 사진은 김대중정부 임기 첫해인 1998년 7월31일 청와대에서 촬영된 것이다. 이튿날인 1999년 8월1일자 조간신문들이 앞다퉈 1면에 게재한 뜻깊은 장면이기도 하다.
당시는 국제통화기금(IMF) 개입을 초래한 외환위기 후폭풍으로 온 국민이 구조조정과 실업, 예금 잔고 바닥 등 고통에 시달릴 때였다. 이에 김 전 대통령은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그리고 김영삼(YS) 등 생존해 있던 전직 대통령 전부를 청와대로 초청해 만찬을 함께하며 “국난 극복을 위한 국가 역량 결집에 적극 노력해달라”고 부탁했다.
이 사진은 역대 대통령 5명이 한 자리에 모인 모습을 촬영한 것으로는 유일무이하다. DJ는 그 뒤로도 여러 차례 전직 대통령 초청 행사를 가졌으나 평생의 라이벌이었던 YS가 “쿠데타를 일으키고 군사정권을 한 전두환, 노태우 두 전직 대통령과 더 이상 자리를 함께하기 싫다”며 참석하지 않아서다.
실제로 1998년 7월31일 만찬장에서 최규하, 전두환, 노태우 세 전직 대통령은 활발히 발언을 한 반면 YS는 거의 입을 열지 않아 대조를 이뤘다고 당시 언론은 전하고 있다.
“부디 초지일관을 잊지 마시라. 마음으로 돕겠다.”(최규하 전 대통령)
“외환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한 것은 김(대중) 대통령의 지도력 덕분이다. 망국적 지역감정을 극복하고 화해·협력의 시대를 열어 달라.”(전두환 전 대통령)
“김(대중) 대통령이 원칙대로만 해나간다면 성공할 것을 확신한다. 명실공히 ‘제2의 건국’을 이루려면 대통령에게 힘이 필요하며, 그 힘은 국민적 뒷받침에서 나올 수 있다.”(노태우 전 대통령)
황 대표는 바로 이 대목을 거론하면서 김대중 전 대통령이 “화해·용서·화합·통합의 정치로 우리 민주주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그는 최근 악화한 한·일 관계를 염두에 둔 듯 “대통령님은 1998년 10월 일본을 방문해 21세기 한일 공동 파트너십을 구축했다”며 “한일 양국이 과거를 직시하되 미래지향적인 관계를 만들자는 선언, 즉 김대중-오부치 선언”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한편 이날 추도식에는 문희상 국회의장, 이낙연 국무총리도 참석해 나란히 추도사를 했다. 더불어민주당 이해찬 대표, 바른미래당 손학규 대표, 민주평화당 정동영 대표, 정의당 심상정 대표 등 정당 지도자들도 추모사를 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직접 참석하는 대신 페이스북에 장문의 추도 글을 올렸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