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20년대 말쯤부터 아동상담소에 ‘아이의 행동이 너무 부산하다, 주의가 산만하다, 충동적으로 화를 잘 낸다’ 등의 행동 문제를 호소하는 부모들의 상담이 갑자기 증가했다. 이에 대해 많은 전문가들은 갑자기 이런 문제가 늘어난 원인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몇 년 전 미국 전역에서 많은 생명을 앗아간 뇌염을 앓고 살아난 아이들임이 밝혀졌다. 이들에 대한 병명은 ‘뇌염후 뇌증’ 혹은 ‘뇌염후 행동장애’로 붙여졌다.
이전에는 이런 문제 행동의 원인을 잘못된 양육이나 훈육 부재로 간주했다. 그러나 이때부터 뇌 기능이 아이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후 연구들이 진행됐고, 이런 바탕으로 약물치료가 뉴욕 근처의 한 아동양육시설에서 시도돼 ‘놀라운’ 효과를 냈다. 이 결과는 1937년 학술잡지에 보고됐다.
1970년대 후반 아동·청소년 행동장애와 관련한 ADHD(주의력결핍 과잉행동장애)가 주목받기 시작했고, 1990년대 들어서는 ADHD 약물치료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그러나 여전히 양육·훈육의 관점이 강하던 시기여서 ‘말 안 듣는다는 이유로 ADHD 약물을 처방한다’는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1998년 미국 국립보건원 주관하에 대규모 공청회가 열렸다. 2박3일간 수백 명이 열띤 논의를 벌인 끝에 ADHD는 분명 치료해야 할 질병이고, 약물치료가 매우 중요하다는 합의를 이끌어내게 된다.
이것은 마치 수백 년 전 중세 유럽에서 정신이상자를 마녀로 간주해 화형에 처하거나, 수용소에 가두어 쇠사슬에 묶어 놓았던 사람을 치료해야 할 환자로 보기 시작한 것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1990년대 후반기에 들어 ADHD에 대한 관심이 늘기 시작해 2000년대 이후 약물 처방이 증가했다.
건강보험공단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일반 초등학교 연령의 아동 가운데 ADHD 약물처방을 받은 비율은 0.94%다. 일부에서 ADHD가 과잉 진단되고 약물처방이 내려지는 것 아니냐고 우려하는 것에 비하면 수치는 매우 낮다. 전문가들은 오히려 국내에서 ADHD 치료가 필요한 아동들에 비해 약물처방 비율이 턱없이 낮다고 보고 있다.
미국의 경우 시설아동 가운데 정신건강문제를 안고 있는 아동 비율이 50~80%에 달할 정도로 높고, 정신과 약물 복용비율은 40~80%에 이른다.
ADHD 약물처방이 과잉이라는 우려는 지금까지 훈육의 차원에서 다루던 문제가 치료의 대상으로 변하는 과정 중 불거진 논란으로 보인다. 물론 지나친 의료화(medicalization·기존에는 의학적 문제로 여기지 않았던 증상을 질병·질환으로 정의하고 치료하는 것)는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지난 백여 년간에 걸친 연구 성과에 의한 과학적 변화를 이제는 우리도 받아들여야 할 때가 아닌가 싶다.
많은 학교 부적응 학생들, 말썽꾸러기로 자주 야단맞는 아이들, 멍하니 ‘멍’ 때려 학업에 지장받는 아이들, 화를 잘 참지 못해 친구들에게서 따돌림받는 아이들, 많은 학교폭력의 피해·가해 학생 등 클리닉에서 만나왔던 많은 아동·청소년들을 올바르게 키워 나가기 위해 훈육에 대한 심리 치료적 지원과 함께 적절한 약물치료는 매우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