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22일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을 더는 연장하지 않기로 하면서 경제에 이어 양국의 군사·안보협력마저 끊어지게 됐다. 전문가들은 지소미아 파기가 한·일 관계의 불화가 장기화되는 시발점이 될 것으로 봤다. 일본의 추가 보복 조치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안보 협력 악영향 예고
지소미아는 2016년 11월 한·일 양국이 북한의 핵과 탄도미사일을 비롯한 대량살상무기(WMD)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체결한 협정이다. 2급 이하의 군사기밀을 서로 공유하면서 북한 핵시설 동향과 탄도미사일 개발 움직임 등을 파악하는 데 양국이 상호 협력하는 기반이 됐다. 특히 양국이 1945년 광복 이후 맺은 유일한 국방분야 협정이라는 측면에서 양국 안보협력의 상징으로 평가받아왔다.
정부는 2016년부터 이달까지 29건의 2급 군사정보를 일본과 교환했다. 올해 정보교환은 지난 5월4일 KN-23 단거리 탄도미사일 발사를 제외한 나머지 7차례의 북한 단거리 미사일 발사에 대해 이뤄졌다.
지소미아를 종료시킨 정부는 2014년 12월 체결된 한·미·일 정보공유약정(TISA)에 의한 한·일 간 정보교환을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TISA는 미국을 거쳐 한·일이 군사정보를 주고받는 체계다. 한국 국방부가 미국 국방부에 정보를 전달한 뒤 한국 승인을 거쳐 미국이 일본에 정보를 전달한다. 일본 방위성이 미 국방부에 정보를 보내면 일본 승인을 받아 한국에 전달된다. 북한 핵·미사일 관련 정보를 공유하므로 지소미아를 대체할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미국을 경유하는 만큼 정보 교환 속도가 느릴 수밖에 없다. 일본이 정보공유를 거부할 경우 TISA가 무력화되면서 한·미·일 3국 안보협력에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TISA 외에도 정부와 군은 한·미 정보공유를 강화해 지소미아 공백을 대체하는 작업을 진행할 것으로 보인다. 독자적인 정보수집능력 강화도 이뤄질 전망이다.
◆전문가들 “상황 점점 어려워질 것”
전문가들은 이날 정부의 지소미아 파기 결정에 대체로 의외라는 반응이다.
김재신 국립외교원 일본연구센터 고문은 “놀랐다. 일본이 (자존심을) 내려놓고 지소미아를 연장하겠다고 했고, 우리도 연장을 생각했던 것으로 봤다”며 “양측이 시간이 갖고 협의를 해보지 않을까 했는데 이렇게까지 될지는 생각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김 고문은 “앞으로 여러 여파가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며 “상황이 점점 더 어려워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일본의 수출 규제 조치 이후 그나마 공조를 해왔던 군사·안보 협력까지 무너지면서 양국 관계의 냉각기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양기호 성공회대 교수는 “지소미아는 2급 이하의 비교적 낮은 수준의 군사 정보를 주고받는 것이기 때문에 정보 내용 자체의 실익보다는 양국 군사협력의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던 것”이라며 “일본의 경제 보복 조치 이후에도 상징적으로나마 양국이 협력하고 있던 부분마저 사라지게 됐다는 의미”라고 짚었다.
외교적 고립을 자초한 선택이라는 비난도 나온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은 “일본의 백색국가 지정 제외를 명분으로 지소미아를 폐기했지만 격동하는 동북아 정세를 고려할 때 심각한 안보 우려와 외교적 고립을 야기할 수 있는 잘못된 선택”이라고 꼬집었다. 신 센터장은 “한·미·일 안보협력의 기반을 스스로 붕괴시키면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의 우려도 커지고 있고 한·일관계 전면적 악화에 따른 경제적 악영향도 전망해볼 수 있다”고 짚었다. 이어 “일본은 동아시아 질서에서 한국을 배제하고 미·일 주도의 질서로 재편해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라며 “미국이 당장 한국을 배제하지는 않을 것이므로 한·미동맹 강화를 통해 극복해 나가야 할 것 같다”고 제언했다.
이정우·박수찬 기자 woolee@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