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은 일본을 겨냥한 것이지만, 이로 인해 외교적 부담은 그 이상으로 번지게 됐다. 특히 미국이 지소미아의 연장을 강하게 원했다는 점에서 한·미 관계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미국은 지난달 초 한국에서 지소미아 종결 가능성이 흘러나오자 직간접적으로 이를 유지해야 한다는 입장을 우리 측에 지속 전달해 왔다.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과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데이비드 스틸웰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 등 최근 한국을 찾은 미 고위 당국자들도 한국 측과의 대화에서 지소미아가 한·미·일 안보 협력에 상당히 기여한다는 취지의 입장을 밝혔다.
앞서 지난 2016년 11월 한·일 간에 지소미아가 체결된 데도 미국 오바마 행정부의 의지가 강하게 작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전까진 한·일 간에는 미국을 거쳐야 북핵·미사일 정보가 공유됐지만, 지소미아가 체결되면서 한·일 간 직접 공유가 가능해졌고 한·미·일 안보협력의 중요한 토대가 마련됐다는 게 미국의 인식이었다. 미국은 지소미아를 통해 한·일이 협력하게 함으로써 다른 정보에 더 집중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박원곤 한동대 교수는 “미국은 지소미아를 통한 한·미·일 안보 협력을 통해서 이 지역 안보 유지를 위한 책임과 비용을 덜려고 한다”고 설명했다.
한·미·일 안보협력에서 지소미아가 차지하는 상징성도 작지 않다. 한 외교소식통은 “한·미·일 안보협력이 무너지면 북·중·러는 바로 연대를 강화하고 그 틈을 파고드는 경향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최근 한·일 갈등 국면에서 중국과 러시아가 한국방공식별구역(KADIZ·카디즈) 진입을 일삼은 것도 그 방증이라는 것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앞으로 한·미·일 3국의 군사협력이 제한적이고 낮은 수준에서 이뤄질 것이라고 주장했다. 3국이 함께할 수 있는 군사훈련도 매우 제한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그동안에도 한국과 일본은 해상에서 인도주의적 수색·구조훈련(SAREX) 등 제한된 훈련을 해왔다. 미국 측은 SAREX 이외 3국이 함께하는 실전훈련을 한국 측에 요구해왔지만, 군은 난색을 표명하며 참여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앞으로 미·일 동맹을 강조하면서 미측과 연합훈련 횟수와 강도를 높일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렇듯 민감한 사안이다 보니 정부도 지소미아 연장 여부를 결정하는 데 깊게 고심한 것으로 보인다. 결정 과정에서 미국과 긴밀히 협의하는 한·미동맹에 미칠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미국에 설명하는 절차를 거쳤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 내부적으로도 연장을 예측하는 의견이 많았던 점에 비춰 이날 미국에 설명한 것은 ‘통보’에 가깝다는 지적이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이것은 결국 한·일 간 신뢰 문제 때문에 촉발된 상황에서 우리가 내린 결정”이라며 “한·미 동맹과는 별개의 사안이고 한·미동맹은 끊임없이 공조를 강화하면서 발전시켜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미국이 겉으로는 한국의 결정을 “이해한다”고 하더라도 내심 자신들이 추구하는 한·미·일 안보 협력을 저해하는 결정을 내린 데 대해 불만을 가질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남북관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이 일본과 등지고 미국과의 관계도 예전과 같지 않게 되면 자칫 외교적으로 고립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우리로서는 동맹 유지 부담이 더 커졌다. 미국이 지소미아 유지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비용 절감 효과를 잃는 대신 한국에 다른 형태로 동맹 유지 기여를 하라고 할 수 있다는 얘기다. 방위비 분담금 인상과 함께 인도·태평양 전략에 더 적극적 기여를 요구할 수 있다. 대북 협상을 앞두고 미국과 잡음을 내는 것 역시 좋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
홍주형·박수찬 기자 jhh@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