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관절 골절로 병원에 입원 중인 70대 노인 A씨는 거동이 불편해 일회용 기저귀를 착용 중이다. 폐렴이나 방광염 같은 감염성 질환은 없다. A씨가 사용한 기저귀는 의료폐기물인가, 아닌가. A씨의 기저귀는 돌잡이 아이가 찬 기저귀나 여성 생리대와 본질적으로 같은 폐기물인가, 아닌가. 지난해 봄 ‘폐비닐 대란’에서 출발한 폐기물 문제가 돌고 돌아 성인용 기저귀로까지 번졌다. 요양병원에서 사용된 기저귀는 격리 혹은 일반 의료폐기물로 분류돼 보통의 건물에서 버리는 쓰레기와는 별도로 보관·운반돼 별도의 장소에서 소각된다. 기저귀 논란은 환경부가 비감염환자의 일회용 기저귀는 의료폐기물에서 제외하도록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을 내놓으면서 시작됐다.
그런데 이상한 건, 감염 관리에 누구보다 예민한 의사와 정부가 규제 완화를 추진하고 있고, 비교적 책임이 가벼운 민간 의료폐기물 업체가 ‘감염 걱정’을 하며 반대하고 있다는 점이다.
무슨 속사정이 있는 걸까.
◆민간업체·의료계 뒤바뀐 주장?
◆의료폐기물 전용소각제도 가진 유일한 나라
언뜻 보아 입장이 뒤바뀐 듯한 이런 상황은, 가장 민감하지만 대놓고 말하기 어려운 ‘돈’과 관련돼 있다.
원래 병원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은 보건복지부 소관이었다. 병원 폐기물을 처리하는 업체도 일반 쓰레기 업체와는 완전히 분리돼 운영됐다.
그런데 2000년 8월 병원 폐기물 관리 업무가 환경부로 넘어오면서 문제의 싹이 트기 시작했다. 당초 정부는 어떤 업체든 의료폐기물을 처리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덩치 큰 일반 폐기물 업체와 소규모 의료폐기물 업체 간 공정한 경쟁이 어렵다는 지적이 나왔고, 결국 의료폐기물 업체의 업무영역을 보장해주는 차원에서 둘을 엄격히 구분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우리나라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의료폐기물 전용소각제도를 가진 나라가 됐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의료폐기물 수집·운반을 별도 트랙으로 하도록 권고하지만, 소각장 자체를 의료폐기물 전용으로 지어 운영하는 나라는 없다. 소각장이 사업장폐기물과 의료폐기물을 모두 다룰 수 있게 인허가를 같이 받는 경우가 보통이다.
우리나라도 사업장·의료폐기물이 완전히 분리돼 있지만, 의료소각시설에 폐기물 자동투입·계측장치가 있다는 점만 빼면 연소실 온도, 연소가스 체류시간, 연소가스 온도 등 나머지 시설기준은 모두 동일하다.
고령화, 감염관리 강화에 따라 의료폐기물은 늘어나는데, 이를 처리하는 업체는 사실상 과점체제에 있다 보니 소각용량은 점점 턱까지 차고 소각비용은 ‘부르는 게 값’인 상황이 됐다.
현재 의료폐기물 소각 비용은 2년 새 2배가량 뛰어 t당 140만원까지 받기도 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보통 병원이 100을 낸다고 했을 때 수집·운반이 50, 소각이 50으로 나눠 갖는다”며 “개정안에 따라 전용소각장이 아닌 일반사업장폐기물 소각장을 이용할 수 있게 되면, 그만큼 의료폐기물 업계의 이익이 뚝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했다.
업계에서는 이권 싸움이 아니라고 했다.
채병운 의료폐기물공제조합 사무국장은 “0.01%의 위험이 있다면 안전하게 처리하는 게 중요하다”며 “병원에서도 멸균시설을 놓고 100% 안전하게 폐기물을 버린다는 보장만 있으면 우리도 반대하지 않겠다”고 했다. 이어 “사실 병원도 자기들 이익 때문에 멸균시설 놓을 자리에 병실을 두는 것 아니냐. 장비 설치하고 병리사가 검사하는 체계를 갖추면, (기저귀를 전용소각장에서 태우든, 일반소각장에서 태우든) 비용은 거의 비슷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분리배출·발생지처리 원칙 지켜야
요양병원 기저귀를 둘러싸고 갈등이 불거진 데는 이처럼 ‘의료폐기물’이라는 특수한 상황이 작용했다. 하지만 폐기물의 기본원칙 즉, 철저한 분리배출과 발생지 처리라는 점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았다는 문제도 있다.
김성환 교수는 “일반병동에서 나온 폐기물 상자를 개봉했을 때 70%는 과자봉지, 우유갑, 바나나, 면도기 등 의료폐기물이라 보기 어려운 쓰레기가 섞여 있었다”고 했다.
분리배출이 철저히 지켜지지 않는 이유는 환자나 방문객이 신경 써서 버리지 않은 탓이 크다. 하지만 그간 병원에서 나오는 쓰레기는 ‘엄격관리’에 초점을 두고 다뤄온 영향도 있다.
권병철 환경부 폐자원관리과장은 “복지부로부터 의료폐기물 업무를 넘겨받은 2000년부터 2017년까지는 엄격관리라는 목표 아래 의료폐기물의 범주를 넓게 잡고, 투명하게 관리하는 데 주안점을 뒀다”며 “특히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이후로는 ‘미심쩍은 건 일단 의료폐기물로 버리자’는 방향이었다”고 설명했다.
이제는 관리 방향을 바꿔 의료폐기물 처리에 숨통을 틔워야 한다는 게 정부 입장이다.
문진국 자유한국당 의원(환경노동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1∼3월 의료폐기물 소각업체의 가동률은 평균 123%에 이른다. 법적 최대가동률(130%)을 넘긴 업체도 두 곳이 있는데, 그중 한 곳은 무려 180.7%에 육박했다.
의원실 관계자는 “허가용량을 넘겨도 정부로서는 (의료폐기물이 포화한 상태라) 해당 업체에 운영정지 등의 제재를 가하기 어렵다”고 했다.
문 의원이 발의한 폐기물관리법 개정안은 분리배출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때의 벌칙 조항을 추가하고, 대형병원은 자체 멸균시설을 두도록 했다.
우리나라 의료폐기물의 42%(2017년 기준)는 수도권에서 발생한다. 그런데 전국 14개 전용소각장 중 6곳(43%)이 영남에 몰려있다. 의료폐기물이 장거리 이동할 수밖에 없다. 메르스 사태 때 서울삼성병원의 의료폐기물이 경주에서 발견된 것도 이 때문이다.
따라서 각 병원에 멸균시설을 설치해 일반 의료폐기물의 감염위험을 낮춰 발생지에서 가까운 일반소각장에서 처리하자는 게 개정안의 취지다.
환경부는 “앞으로는 멸균설치 의무화, 감염관리 강화 등을 통해 병원에도 폐기물 관리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이라고 전했다.
◆日도 ‘골머리’ … 변기에 바로 버리는 기저귀 개발중
성인용 일회용 기저귀 폐기물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니다.
우리보다 20여년 먼저 고령사회에 진입한 일본에서도 성인 기저귀 처리방안을 두고 고민이 깊다.
지난 1월 아사히신문과 도쿄신문 등 현지 언론에 따르면, 일본 국토교통성은 ‘변기에 바로 버리는 기저귀’를 고안 중이다. 일반 변기에 기저귀를 버리면 관이 막히기 때문에 기저귀를 잘게 쪼개 하수도로 흘려보낼 수 있는 배수관을 검토하고 있다. 이르면 2022년쯤 도입될 전망이다.
그러나 친환경적인 처리방법이 아니라는 지적도 많다. 기저귀는 펄프와 플라스틱으로 만들기 때문에 기저귀를 갈아서 하수도로 버리는 것은 대놓고 미세플라스틱을 강과 바다로 흘려보내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방법이 현실화되기 위해선 기저귀 재질부터 생분해되는 것으로 바꿀 필요가 있다.
그 중간단계로 용변이 분리되는 기저귀를 만들어 용변만 변기에 버리는 것도 검토 중이다. 이렇게 되면 소각 기저귀의 중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다.
기저귀 사용량 자체를 줄일 수도 있다. 이는 요양원 노인들의 복지 차원에서도 고민해 볼 법한 주제다.
일부 요양병원은 ‘존엄케어’의 일환으로 ‘탈(脫)기저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기저귀는 제때 갈지 않으면 각종 피부질환과 요로감염 등을 일으킨다. 한번 기저귀에 익숙해지면 건강이 회복돼 기저귀가 필요 없어져도 떼기 어려워진다.
탈기저귀 운동은 ‘기저귀는 거동이 불가능한 사람에게만 사용해야 하며, 간병인의 편의를 위해 불필요한 이들에게 기저귀를 채워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일본에는 탈기저귀를 추진하는 곳이 많고, 우리나라처럼 고령화 속도가 빠른 싱가포르에서도 탈기저귀 움직임이 일고 있다.
이윤환 대한노인요양병원협회 기획위원장(복주요양병원 이사장)은 “요양병원이 가격경쟁을 벌이다 보니 간병인을 늘리기보다 기저귀를 채우고 있다”며 “가격경쟁에서 서비스경쟁으로 넘어갈 수 있도록 정부가 환자가족의 간병부담을 덜어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윤지로 기자 kornyap@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