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월 말 북·미 정상의 판문점 회동 이후 기대됐던 양국 실무협상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가운데 ‘베트남의 역할론’이 제기됐다. 베트남은 지난 2월 말 열린 2차 북·미 정상회담의 개최지였으며, 2020년 아세안 의장국이다. 지난 27일 서울 중구 조선호텔에서 열린 ‘한·베 미래포럼’에서 양국 전문가들은 분단국가 경험을 지닌 베트남의 적극적인 역할이 한반도 평화 정착 과정에서 필요하다는 데 공감했다. 한국국제교류재단(KF)과 베트남 사회과학원(VASS), 서강대 동아연구소가 공동주최한 이날 포럼엔 이시형 국제교류재단 이사장, 당 응우옌 아잉 사회과학원 부원장, 응웬 찌 타이 베트남 국회의원, 이혁 한·아세안센터 사무총장, 응웬 부 뚜 주한베트남대사, 권율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F) 선임연구위원, 베트남 주재대사를 지낸 임홍재 아셈노인인권정책센터 원장 등 전문가 30여명이 참석했다.
이날 포럼에서 전문가들은 분단경험을 지닌 데다가 사회주의 체제에서도 높은 경제성장률을 달성하고 있는 베트남이 북한의 ‘롤 모델’로 제격이라고 평가했다. 포럼의 첫 번째 세션 ‘평화와 번영을 위한 한국-베트남 협력 방안 모색’에서 팜 홍 타이 VASS 동북아연구소 소장은 “한반도 평화 과정에서 베트남이 중재국가로서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며 “베트남은 경제 개혁과 국제무대 진출을 위한 북한을 위한 귀중한 개발 모델”이라고 강조했다. 이재현 아산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경제성장 경험 공유 측면에서 베트남은 동남아에서 가장 이상적인 국가”라고 설명했다. 김형종 연세대 교수는 이들 학자의 발표 내용에 공감했다. 김 교수는 “베트남과 남북한이 경험을 공유하려는 자세가 중요하다”며 “남북 관계와 관련 베트남이 중재자와 세력 균형자, 규범적 선도자로 역할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일부 토론자는 “베트남이 남북한 동시수교국이며 분단체제를 거쳤다는 점을 고려할 때, 보다 적극적인 역할이 필요하다”며 “가령 베트남 국가주석의 남북 동시 방문이 추진된다면 남·북·미 정상의 회동 이상으로 한반도 평화 프로세스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이날 포럼은 이외에도 ‘한국-베트남 경제협력과 동반성장’, ‘한국-베트남 사회문화 협력과 상호이해 증진’ 등 모두 3개의 세션으로 구성돼 진행됐다. 한국과 베트남의 상호협력의 중요성이 논의됐으며, 베트남 측 인사들은 정보통신분야와 사회문화 부문의 협력을 강조했다.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부원장은 양국 과학기술교류의 일환으로 설립되고 있는 VKIST의 성과에 대해 설명했다. 응웬 찌 따이 국회의원은 스마트시티 등 한국의 발전 모델이 베트남에서 이행되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행사를 총평한 임홍재 원장은 “2012년 첫 포럼을 시작으로 2015년부터 격년으로 개최되는 미래포럼이 해를 거듭할수록 보다 건설적인 제안을 내놓고 있다”며 “한국의 경험이 베트남에 영향을 준 것처럼, 베트남에서 진행되는 사례가 북한의 변화에 자극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당 응우옌 아잉 사회과학원 부원장 등 베트남 인사들은 “오늘 논의된 내용들을 잘 정리해 베트남 정부에 정식 제안해 정책으로 반영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이시형 국제교류재단 이사장은 “제가 2000년대 중반 폴란드 대사 시절 김평일 북한대사와 간혹 자리를 함께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그때 우리를 이해하며 남북대사가 한 자리에 모인 사진을 기꺼이 찍었주었던 폴란드주재 베트남 대사의 우정을 잊지 않고 있다”며 “오는 11월 부산에서 열리는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와 제1차 한-메콩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에도 베트남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정우 기자 woolee@segye.com